언제부터인가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각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정작 개인정보 보호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개인정보 보호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개인정보를 잘 보호해야겠지만 딱히 요구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사회적 투명성을 저해하거나 기업의 새로운 시도를 방해하는 명분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구분을 잘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가 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선행돼야 한다.
‘옆집 밥숟가락 개수도 안다’는 표현이 있다. 주로 전통사회를 전제로 이웃과 친밀한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누군가 이웃집의 수저 개수를 알고 있다면 오히려 의심을 살 가능성이 높다. 이웃집의 내밀한 부분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부적절하게 인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정보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가 바뀌면서 함께 바뀌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전통사회로부터 현대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 존중이 크게 강조되면서 개인정보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높아졌다. 개인정보 보호 논의가 일찍 시작된 서양에서는 근대 시민사회의 형성 이후로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개인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흐름 또한 본격화됐다.
개인정보 보호를 구체적인 법의 틀을 통해 담아낸 것은 20세기 후반에 본격화됐지만 단초가 되는 사회적 논의는 이미 근대 시민사회의 형성과 함께 구성원의 권리가 강조되면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동의하에 사진이나 그림의 모델이 되고 난 뒤에 사후적으로 동의를 철회할 권리가 부여돼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해당 사진이나 그림의 유통에도 제한을 둘 수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이미 19세기 중순에 법적 논쟁이 나타난 바 있다. 이러한 논쟁은 21세기 들어 개인정보 수집에 대해 동의를 철회할 수 있는 권리 등의 형태로 변모돼 나타났다.
현대에 와서는 개인정보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상당히 다양한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근본적 가치로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보호법 또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나아가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핵심적인 이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존중하고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AI 기술을 활용해 개인에 대해 유형화하고 프로파일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차별이나 그 외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부각되기도 한다. 안면인식 기술과 관련해서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이런 기술은 모두 유용하고 편리한 면이 있는 반면 잘못 이용되면 부작용이 크게 나타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기술의 사회적 도입을 위해서는 적절한 개인정보 보호를 통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