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000270)가 미국 시장에서 거침없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심의 현지화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감한 사명 변경도 마케팅에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 기아는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문제도 라인업 확대로 정면 돌파해 브랜드 입지를 더욱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2일 현대차(005380)그룹에 따르면 기아는 지난달 미국에서 7만 1497대를 판매했다. 전년 동기 대비 23.4% 증가한 것이다. 현대차(제네시스 포함)가 판매량으로는 7만 5606대로 더 많았지만 증가율로 보면 기아가 현대차(18.4%)보다 높았다.
무엇보다도 SUV가 판매량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2019년 출시된 텔루라이드는 북미 시장을 겨냥한 전략 차종으로 같은 기간 35% 증가한 1만 5대가 팔렸다. 넉넉한 적재 공간을 갖추고 있어 인기 높은 패밀리카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미국 차량 통계 전문 매체 ‘굿카배드카’에 따르면 텔루라이드는 지난해 미국에서 준대형 SUV 가운데 5번째로 많이 팔렸다. 기아는 올해 5월까지 텔루라이드와 스포티지만으로 10만 대 이상 판매했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기아가 도요타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재고가 적은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IRA로 인해 우려를 샀던 전기차 또한 선방했다. 현대차그룹의 5월 한 달간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49% 늘어난 총 8105대로 월간 기준 역대 최다 판매치를 달성했다. 이중 기아 EV6는 2237대 팔리며 올해 들어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북미산 전기차만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구매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와중에 IRA의 예외 적용을 받는 리스차 비중을 확대한 덕이다.
앞으로는 라인업 확대로 IRA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아는 신형 플래그십 전기 SUV인 EV9을 미국에서 올 하반기 출시하고 내년부터 조지아주 공장에서 현지 생산하기로 했다. EV9은 기아가 북미에서 생산하는 첫 전기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아는 유럽에서도 크게 선전하고 있다. 기아는 지난해 유럽에서 전년 대비 8% 증가한 54만 2423대를 판매하며 사상 처음으로 현대차(51만 8566대)를 넘어섰다. 유럽 시장 점유율도 기아(4.8%)가 현대차(4.6%)에 앞섰다. 판매 대수와 점유율 모두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이 같은 글로벌 위상에는 전면적인 브랜드 혁신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아는 2021년 31년 만에 사명을 변경했다. 송호성 사장은 그해를 “새로운 로고·디자인·사명이 적용된 ‘기아 대변혁’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차 제조·판매를 넘어 혁신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