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가부장 문화 바꿔야 저출산 넘는다

출산율 하위 10개국에 동아시아 6국

유교 바탕 급성장, 미래 벌써 저물어

이대로 가면 ‘1호 인구 소멸국’ 우려

가족 형태 다양성, 양육 배려 환경을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들이 동아시아에 몰려 있다. 지난달 발표된 ‘유엔 세계 인구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세계 238개국의 합계출산율 하위 10개국에 동아시아 6개국이 포함됐다. 홍콩(1위 0.75명), 한국(2위 0.78명, 2022년 기준), 싱가포르(5위 1.02명), 마카오(6위 1.09명), 대만(7위 1.11명), 중국(10위 1.16명) 등이다. 일본도 19위(1.3명)로 저출산 위기 국가로 분류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른 경제성장으로 ‘아시아 네 마리의 용’, 세계 2·3위의 경제 대국 등으로 부상한 나라들이다. 유교 문명을 배경으로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룬 국가들이 동시에 인구절벽의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급성장 배경에는 ‘견리사의(見利思義)’가 있다고 한다. 유교의 기본 정신인 인의예지(仁義禮智) 가운데 의를 바탕으로 쌓은 신뢰가 빠른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이제는 충효(忠孝)를 바탕으로 하는 유교적인 가부장적 문화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한국이 지구상에서 ‘1호 인구 소멸 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세계적 인구학자인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콜먼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열린 포럼에서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다운 것’인 결혼, 과한 노동, 교육열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두 유교적인 가부장적 문화와 관련된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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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젊은 세대에서는 이미 동거가 하나의 가족 형태로 보편화했다. 2020년 합계출산율이 1.79명으로 성공적인 저출산 정책을 편 프랑스의 비혼 출산 비율은 전체 출산의 62.2%다. 아기 100명 중 62명이 동거 등으로, 즉 결혼하지 않은 엄마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같은 해 유럽연합(EU)의 평균 비혼 출산 비율도 41.9%에 달했다. 이혼이 많다 보니 차라리 살아 보고 확신이 서면 결혼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진 측면도 있을 것이다. 반면 같은 해 한국의 비혼 출산 비율은 불과 2.5%로 최하위 수준이었고 합계출산율은 0.84명이었다. 비혼 출산이 쉽지 않으니 ‘비혼 비출산’으로 인구절벽으로 내몰린 것이다.

유럽 정신문화의 바탕인 가톨릭과 기독교도 유교처럼 가부장적 성격을 지녔다. 하지만 유럽은 동아시아와 달리 성공적으로 이를 극복했다. 1968년 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에 반발해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68혁명’이 권위주의에 반기를 드는 사회변혁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결혼 제도에 대한 거부 움직임이 확산됐다. 이는 1990년대 후반 동거 커플을 법적으로 공인해 세금·사회보장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 도입으로 이어졌다.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 제도의 경우 유산 상속권을 제외하고는 결혼한 부부의 권리 보장 내용과 비슷할 정도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1명 미만이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아이들은 우리들의 미래다. 한국은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미래는 벌써 저물고 있다. 이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경우 이르면 2031년에 인구 5000만 명이 붕괴될 수 있다. 부양 인구의 급증으로 연금·복지·경제·재정·안보 등 국가 전반에서 통제하지 못할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다양한 가족제도 등 가부장적 문화의 변화를 선도하는 정책을 과감히 도입하고 국민도 변해야 한다. 생활 구석구석에서 가부장적 문화를 걷어내지 못하면 선진국 지위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그야말로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노동시장 개혁으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육아·교육 환경도 개선해가야 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해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줘야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가사 노동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주로 의존하고 있다. 직장뿐 아니라 가정 내 양성평등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근로자들이 큰 부담 없이 아이를 직접 양육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적극적인 이민 유입 정책도 필요하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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