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4개월째 국내 경기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한국 경제 버팀목인 제조업이 부진을 거듭한 탓이다. 고물가·고금리와 지정학적 불안 등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KDI는 11일 발간한 ‘6월 경제동향’을 통해 “최근 우리 경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부진한 상황”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KDI가 올 3월 경제동향에서 처음 공식화한 ‘경기 부진’ 진단이 이달까지 4개월 연속 이어진 셈이다. KDI는 “(특히) 반도체는 생산 감소폭이 축소됐지만 재고가 큰 폭으로 증가하며 여전히 위축된 모습”이라며 “수출은 글로벌 경기 둔화로 큰 폭의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KDI는 역대 최고치로 치솟은 제조업 재고율도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4월 제조업 재고율은 130.4%로 전월 대비 13.2%포인트 올랐다. 198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반도체만 놓고 보면 재고율은 267.9%에 달한다. KDI는 “제조업은 평균가동률이 낮은 수준에 정체된 가운데 재고율이 전월보다 큰 폭으로 상승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며 “제조업 출하가 감소한 반면 재고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대폭 증가하며 제조업 부진을 반영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KDI는 경기 저점을 시사하는 지표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도체와 대중(對中) 수출 감소폭이 둔화된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 지난달 반도체 수출 감소폭(전년 동기 대비)은 36.2%로 올 4월(41%)보다 완화됐다. 대중 수출 감소폭 역시 올 4월 26.5%에서 지난달 20.8%로 둔화됐다. KDI는 “반도체 수출 금액과 물량 감소세가 일부 둔화됐고 대중 수출 감소폭이 축소되는 등 수출 부진이 다소 완화하는 모습”이라며 "경기 부진이 심화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투자 수요는 당분간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올 4월 설비투자가 반도체와 운송장비를 중심으로 증가세를 보였지만 아직 제조업 부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KDI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설비투자 관련 선행지수도 부진한 모습”이라며 “설비투자 증가폭 확대는 지난해 4월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도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도 언급했다. KDI는 “주요국 물가상승세가 다소 둔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긴축적 통화 정책으로 경기 하방위험도 상존한다”며 “미국은 내수 부진에 신용 위축 우려가 커지며 올 하반기 이후 완만한 경기 침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KDI는 “중국은 경제활동 재개로 서비스업이 회복되고 있지만 아직 경제 전반의 회복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불확실성도 지적했다. KDI는 “중국 경제활동 정상화 이후 경기 침체 우려가 완화됐지만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내수 부진과 지정학적 위험으로 성장세가 둔화될 전망”이라며 “미국 통화 정책과 부채한도 협상 관련 불확실성 등으로 국제 금융시장도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