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수주잔액 100조원 시대를 연 국내 방위산업체(K방산)의 고속성장이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올해 정부 추산 K방산의 수출액은 200억달러(약 25조8000억원)로 2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K방산의 잇따른 수주 잭팟에 기업들의 실적이 큰 폭으로 뛰고 있다. 폴란드 수출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5대 방산 기업의 합산 영업이익은 2024년까지 2배 이상 늘어 2조 원 시대를 코앞에 뒀다.
방산 기업들의 실적 개선은 4박자가 맞아떨어졌다. 좋은 품질에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뛰어난 유지 보수 능력에 정부의 지원 및 국제 정세 변화도 한몫했다. 2013~2020년 연평균 31억 4000만 달러였던 해외 수주액은 2021년 72억 5000만 달러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173억 달러를 기록해 역대 최고라는 축포도 터뜨렸다.
내년 방산 ‘빅5’ 영업이익 2조 눈앞…매출은 23조
12일 관련 업계와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방산 5개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현대로템(064350)·한화시스템(272210)·LIG넥스원)의 2024년 예상 영업이익은 1조 8188억 원으로 지난해(8690억 원)보다 109%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같은 기간 매출액도 16조 8090억 원에서 23조 622억 원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지난해 7월 폴란드가 최대 20조 원대로 추산되는 한국산 무기류를 사들이기로 결정하면서 K방산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4월 한국이 폴란드에 수출한 전차 금액은 2억 5500만 달러로 이미 지난해 전체 금액(2억 100만 달러)을 넘었다.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 누적 수출 규모는 4억 5600만 달러로 약 600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1차 계약을 마친 방산 기업들이 올해부터 K-2 전차와 K-9 자주포 등 무기 공급을 본격화함에 따라 실적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K-2 전차는 올해 하반기 820대 2차 계약이 추가로 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상 무기에 이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생산하는 경공격기 FA-50의 폴란드 인도도 시작된다.
수출품목 6개, 수출국가 20개국…K방산 수출의 질 달라져
‘수주 잭팟’을 터뜨리고 있는 국내 방위산업체(K방산)가 주목받는 것은 단순히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급증해서만은 아니다. 지난해 기준 수주 잔액 100조 원을 돌파한 K방산은 수출의 질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2017년 2종에 불과했던 수출 품목은 지난해 6개로 늘었고 수출 국가도 아시아·중동 국가 위주에서 유럽·아프리카 등으로 넓어졌다. K방산의 수출 증가가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K방산이 반도체·자동차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출 효자’로 본격적인 고속 성장의 궤도에 올라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K방산의 수출은 품목과 수출국이 다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품목은 탄약부터 전차·자주포·전투기·잠수함 등으로 다양화됐고 수출 국가 역시 기존의 아시아·중동 국가에서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됐으며 절대적인 숫자도 크게 늘었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의 방산 수출 품목은 K-9과 T-50 2개뿐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청상어 어뢰와 훈련 비행기 KT-1B가 추가됐고 2019년에는 잠수함과 해성 미사일까지 해외로 수출했다. K방산의 르네상스를 맞은 지난해에는 수출 품목이 K-9자주포, FA-50, M-SAM II, K-2전자, 천무, 원양경비함 등 6종으로 늘었다.
수출 국가도 다변화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 지역에 군비경쟁이 벌어지면서 K방산을 찾는 EU 회원국들이 많아졌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국방비 지출액은 2조 2400억 달러로 전년 대비 3.7% 늘었고 특히 유럽 지역은 냉전 이후 30년 만에 가장 많은 군비를 지출하고 있다. 폴란드는 지난해 T-50(FA-50), 천무, K-2전차, K-9자주포 등 K방산 업체와 무기 4종 계약을 체결했다. 노르웨이 역시 K-9자주포를 구입했다. 칠레는 소형전술차(KLTV)를, 페루(초계함)와 에콰도르(경비함)도 해군 무기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말 기준 수출 국가(누적)만 20곳에 달한다.
이봉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신냉전 체제로 무기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국내 기업들은 미국의 우방국이 거래하기가 편안한 나라라는 점에서 혜택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능은 美·獨 제품 견줘 경쟁력 있고, 가격은 저렴
무기를 필요로 하는 국가들이 K방산을 먼저 찾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가성비다. K방산 제품은 미국·독일·프랑스 등 무기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성능은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K방산은 북한의 위협에 맞서야 하는 특수한 안보 환경에서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가격이 싸면 성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K방산에는 통하지 않는 이유다.
이는 외적으로도 인정된 사실이다. 올해 2월 노르웨이 전차 수주전에서 현대로템의 K-2전차는 독일 라인메탈사의 레오파르트에 밀려 고배를 마셨지만 노르웨이 정부는 한국과 독일 전차의 성능이 동일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가격과 성능만 봤을 땐 노르웨이 정부도 K-2 전차를 선택하고 싶었을 것”이라며 “이번 수주전은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러-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외부적 상황 변화가 수주 결과에 더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국방부도 수주전 탈락 이후 "기술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독일 전차와 동등 이상임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 전차의 수출 전망은 더욱 밝아졌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신속한 무기공급 능력, 정부의 전폭적 지원도 K방산의 힘
신속한 무기 공급과 원활한 사후보수도 K-방산의 장점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 특성상 대규모 군 병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 병력 수는 50만명이다. 전투력 유지를 위해 신규 무기 구입과 유지 보수 시장이 커질 수 밖에 없고 각 방산기업의 후속군수지원 체계가 발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K-방산의 제품은 경쟁국의 제품과 달리 현재도 양산 중인 경우가 많아 원활한 사후 보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K-방산의 힘이다. 최근 수주전은 수입국에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는지가 수주를 가르는 핵심 조건이 되는 추세다. K-방산은 정부의 방산 지원체계를 바탕으로 현지에 생산과 기술 이전까지 패키지로 제공하며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에 보낸 축사에서 “대통령부터 '1호 영업사원'이 돼 국내 방산기업 수출 촉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수출대상국에 정비, 교육훈련, 후속 군수지원, 금융지원 등 무기체계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패키지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