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노동조합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한하는 내용의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에 ‘손’을 들어준 판결이 파장을 낳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노란봉투법을 인정했다며 입법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이번 판결의 핵심인 손배소 제한 못지않게 산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사용자 범위 확대’를 담고 있다. 사용자 범위 확대로 원청이 수많은 하청 업체 노조와 교섭을 해야 할 상황이다. 우려되는 사항은 대법원에 이 사용자 범위 확대를 골자로 한 사건이 계류됐다는 점이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이번 판결을 연결 짓는 시각도 짙은 상황이다.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노란봉투법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이 입법되면 하청 근로자, 배달기사와 같은 플랫폼 종사자도 원청 사용자와 단체교섭의 길이 열린다. 검토 보고서도 더 많은 근로자의 노동권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라고 평가했다.
우려는 사용자의 범위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무작정 늘릴 경우 현장에서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용부는 검토 보고서에서 “사외협력 업체에 영향력이 있는 대기업이나 기업에 대해 영향력이 있는 은행도 사용자에 해당될 수 있다”며 “사용자 범위 논란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밝혔다. 노동조합법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규정했다. 노란봉투법이 입법되면 사용자 스스로 단체교섭 대상인지 판단하지 못한 채 교섭을 거부하다가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맹점은 노란봉투법의 주관 부처인 고용부가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란봉투법을 본회의에 부의 요구하는 안이 의결되자 “누가 사용자인지 모호한 개념은 산업 현장의 극심한 갈등을 낳고 법률 분쟁을 폭증시킬 것”이라며 “사용자는 어떤 노조와 무슨 내용으로 단체교섭을 요구할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경영계는 교섭 당사자인 기업들인 탓에 정부보다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큰 분위기다.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수십·수백 개에 이르는 하청 업체 내 노조들과 교섭을 요구받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단체는 지난달 성명을 내고 “(사용자 확대)는 도급이라는 민법상 계약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며 “원청 기업을 대상으로 끊임없는 쟁위행위가 발생한다면 원·하청 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경영계와 정부는 대법원에 계류된 HD현대중공업 하청 업체 노조의 단체교섭청구 소송을 주목하고 있다. 이 판결에서도 대법원이 현대차 손배소처럼 또다시 노조의 손을 들어준다면 노란봉투법은 사실상 입법된 것처럼 산업 현장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관가에서는 이미 “노란봉투법 입법보다 현대중공업 재판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돈 지 오래다. 이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갈지도 최대 관심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과 김명수 대법원장을 연결 짓는 분석이 많다. 이 때문에 김 대법원장이 올해 9월 임기를 마치기 전 HD현대중공업 재판도 마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1심과 2심에서 승소했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재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여당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이틀째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자신을 포함한 몇몇 대법관의 교체를 앞두고 노란봉투법 알 박기 판결을 한 것”이라며 “입법부 차원에서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윤 원내대표는 “정치적 판결로 입법과 사법의 분리라는 헌법 원리에 대한 도전”이라며 “국회에서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면 법원은 관련 판결을 일정 기간 유예하고 국회 논의 결과를 지켜보는 게 상식적인데 선을 한참 넘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