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23)이 피해자의 ‘신분’을 노렸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1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또래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의 정체와 범행 동기를 추적하며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취재진은 정유정이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단서를 여럿 확보했다. 정유정은 범행 3개월 전부터 ‘시신 없는 살인’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색했다. 또한 범행을 사흘 앞두고 선 자신의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중고로 산 교복을 입어 중학생으로 위장했다.
범행 대상은 과외 앱에서 물색했다. 접근한 사람이 피해자 한 명이 아니었다. 사건 발생 직전 정유정에 과외 문의를 받았다는 과외 선생 2명은 한결같이 ‘혼자 사느냐’, ‘선생님 집에서 과외 가능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실제 정유정은 20대 고학력자 중 자택에서 과외가 가능한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노린 것으로 보인다.
정유정은 수사 초기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거짓말하다가 돌연 범죄 수사물을 보고 살인 충동을 느꼈다고 자백하기도 했다. 현재는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유정이 고3이던 지난 2017년 한 회사 면접관이었다는 제보자 A 씨는 6년이 흐른 지금도 정유정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A 씨는 당시 정유정이 ‘검정고시 후 취업준비중’이라며 골프장 캐디에 지원했으며 면접 때 고개를 푹 숙인 채 질문에 대한 답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다만 정유정이 면접에서 탈락하자 이력서를 2~3차례 다시 보내고 전화를 걸어 화풀이를 하며 회사 게시판에서도 탈락 이유를 확인하는 등 집요함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환경을 바꾸고 싶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유정이 부모의 이혼 후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기숙사 생활이 가능한 골프장 캐디에 지원하며 집착 수준의 행동을 드러낸 것이란 설명이다.
또한 정유정이 ‘신분 탈취’를 노리고 범행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정유정은 범행 후 초기 진술에서 “피해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누군가 범행 중이었다. 그 범인이 제게 피해자의 신분으로 살게 해 줄 테니 시신을 숨겨달라고 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심리 전문가는 “당연히 거짓말이다. 그런데 거짓 진술 속에서도 정유정의 욕구를 살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신 유기 대가로 피해자의 신분으로 살게 해주겠다는 말은 정유정에게 피해자 신분이 곧 보상의 의미라는 것”이라며 “피해자의 대학, 전공에 대한 동경이나 열망이 있어서 이러한 진술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유정이 경찰 조사에서 영화 ‘화차(2012)’를 반복 감상했다고 언급한 것에도 주목했다. 해당 영화에서는 김민희가 연기한 ‘차경선’은 타인의 인생을 빼앗은 인물이다. 차경선은 자신의 지옥과 같은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분 세탁을 결심하고, 마땅한 연고가 없었던 또래 여성을 죽이고 그녀의 신분으로 새 인생을 살다가 비극적 결말에 이른다. 이 영화는 일본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정유정이 범행 후 피해자의 옷을 입고 집을 나온 것 역시 신분세탁 욕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