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터리산업협회와 코엑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공동 주관해 14~16일(현지 시간) 독일 뮌헨에서 개최한 ‘인터배터리 유럽’은 K배터리의 기술력을 유럽에 알릴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사상 처음 해외에서 열린 K배터리 전시회지만 여러 알찬 성과가 많았다. 무엇보다 배터리 산업 내재화를 추진 중인 유럽과의 협력이 크게 증진될 수 있었다. 기가팩토리를 짓고 있는 유럽 기업들이 기술력에 앞선 한국과의 협력을 희망했고 이는 우리 배터리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에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세계 2위 배터리 시장인 유럽에서 펼쳐진 중국 기업의 공세는 마치 인해전술을 보는 것 같았다. 인터배터리 유럽이 참가한 유럽 최대 에너지 전시회 ‘더 스마터 E 유럽’에는 중국 업체 비중이 30%나 돼 전시장인 ‘메세 뮌헨’이 중국 업체로 인산인해를 이룬 듯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여파로 유럽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유럽이 한중 배터리의 격전지가 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에서 폭풍 성장 중인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에서 한중 간의 경쟁은 치열했다. ESS는 탄소 중립 사회의 핵심 인프라이자 미국·유럽 중심으로 연평균 30% 이상 시장이 급성장 중인 차세대 에너지 산업이다. ESS 분야를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글로벌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ESS 분야는 K배터리가 이명박(MB) 정부 시절 씨를 뿌려 세계시장의 55%를 차지할 정도로 초기부터 기술과 시장을 선도해왔다. 하지만 ESS 화재 사고로 규제가 강화되면서 지금은 점유율이 14%로 위축돼 있고 국내 ESS 설치 규모도 2018년(3.8GWh) 대비 5%(0.2GWh)에 불과할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던 문재인 정부에서 화재 안전을 이유로 ESS 규제를 지나치게 강화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 틈을 비집고 중국 ESS가 저렴한 가격과 안전성을 내세우면서 세계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인터배터리 유럽을 통해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LS일렉트릭이 새로운 ESS 제품과 기술을 선보이면서 실지(失地) 회복에 나서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은 국내 ESS 시장과 제도의 재정비 없이는 중국 배터리 기업과의 경쟁이 버거워 보인다. ESS 분야에 대한 특단의 재도약 대책이 필요하다. 안전성·신뢰성·비용효과성을 충족하는 차세대 ESS 기술 개발, 사용후배터리 재사용 ESS 개발·보급, 장주기·대용량 ESS 실증 및 관련 규제 재정비를 비롯한 ESS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실기하지 않는다.
ESS 초기 화재 사고는 우리 하기에 따라 실패가 아닌 성공 자산이 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실패 경험과 극복 과정을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 기업들이 ESS 주도권을 되찾아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독일 ‘메세 뮌헨’에서 지켜 보면서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 ESS 산업의 재도약을 도울 때라는 점을 역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