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개혁의 신호탄이 쏘아졌다. 비수도권 대학들에 5년간 1000억 원을 지원하는 글로컬대학 사업에 연세대 미래캠퍼스와 포항공대 등 15개 대학(공동 신청 대학 포함 19곳)이 예비 선정됐다. 선정된 대학들의 특징은 학문, 학과, 대학 간, 산업계 벽을 허물었다는 데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 개혁을 주문하며 특히 ‘대학 간 벽 허물기’를 강조했는데 주문 사항 이행 의지가 선정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위기론이 점화하고 있는 가운데 생존 해법으로 대학들이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모양새다. 교육 당국은 대학 개혁의 마중물인 글로컬대학 사업 외에도 적극적인 규제 혁파를 통해 국내 대학 전반의 경쟁력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킨다는 포석이다.
교육부와 글로컬대학위원회는 2023년 글로컬대학 예비 지정 평가 결과 총 15개 혁신기획서가 선정됐다고 20일 밝혔다.
예비 선정된 대학은 △강원대·강릉원주대 △경상국립대 △부산대·부산교대 △순천대 △순천향대 △안동대·경북도립대 △연세대 미래캠퍼스 △울산대 △인제대 △전남대 △전북대 △충북대·한국교통대 △포항공과대(포스텍) △한동대 △한림대 등 15곳이다.
혁신기획서에 담긴 과제를 구체화하는 실행계획서를 바탕으로10월 중 10개 안팎의 글로컬대학이 최종 선정된다. 예비 지정 평가 영역은 혁신성, 성과 관리, 지역적 특성 등 3가지였다.
교육부는 혁신기획서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 급격한 인구·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고 융합·변화 등 세계적 경향성에 부응하려는 대학들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 다수 대학이 무학과·무학년·무전공제, 대학-지자체-연구소-기업 간 벽 허물기 등을 제안했다.
주목할 부분은 신청이 가능한 비수도권 일반 재정 지원 대학 중 65%가 넘는 108개 대학이 글로컬대학 사업 신청서를 냈다는 점이다. 대규모 자금 지원이 지원 동기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이 과정에서 학생 정원이 줄어들 경우 등록금 수입이 크게 감소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혁신 없이는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글로컬대학 지원 배경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실제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타격은 수도권 대학보다 지방대가 크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최근 공개한 ‘대학 등록금 및 사립대 운영 손익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수도권 소재 대규모(재학생 1만 명 이상) 사립대 22곳 중 12곳(54.5%)이 적자인 반면 비수도권 사립대는 91개교 중 74개교(81.3%)가 적자를 기록했다. 대교협은 대학들이 적자의 늪에 빠진 이유로 장기화된 등록금 동결을 꼽았다. 대학 등록금 동결 정책은 2012년 이후 15년째 이어지고 있다.
현행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대학은 직전 3개 연도 평균 물가 상승률의 1.5배 이내에서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의 경우 국가장학금Ⅱ 유형 지원을 제한하고 있어 대다수 대학이 등록금 동결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국공립대의 경우 2011년 명목등록금(고지서에 적힌 등록금)은 431만9000원에서 올해 423만3000원으로 2.7% 내렸다. 사립대 역시 같은 기간 768만4000원에서 756만9000원으로 1.5% 감소했다.
대교협이 발표한 ‘학생 미충원에 따른 사립대 재정 손실 분석’에 따르면 2022~2025년 4년 총합 예상 운영 손익이 적자로 추정된 사립대는 전체의 26.3%인 총 41곳이었다. 이 중 지방대가 78.1%인 32곳을 차지했다.
지방대 운영 적자 규모는 앞으로 더욱 더 늘어날 수 있다. 학령인구 감소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2021년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6~17세) 수는 2017년 581만9000명에서 2037년 315만9000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글로컬대학 사업으로 자칫 지방대 서열이 더욱 공고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와 선정되지 못한 대학의 퇴출 가능성도 제기된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글로컬대학 사업 등을 통해 구조조정되는 대학이 나올 수 있겠지만 지역에 있는 대학들이 수도권과는 다른 차별화 전략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시기”라며 “그런 점에서 정부가 인센티브를 통해 대학 개혁에 나서는 방향은 맞다”고 밝혔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만큼 교육 당국은 옥석 가리기를 통해 대학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학내 장벽을 유발하거나 대학·산업 간 협력을 저해하는 규제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다만 국내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등록금 규제 완화 등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법이 아니더라도 행정 지도 등 다양한 규제들이 여전히 많다”며 “등록금 문제를 포함해 보다 적극적으로 규제 완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