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을 길러내는 시스템을 보유한 정당의 유무가 그 나라의 수준을 나타냅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수권 정당을 위한 역량을 키웠어야 했는데 관찰이나 성찰은 없이 ‘현찰’만 찾았습니다. 정치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주당을 떠나 새로운 정치를 모색 중인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최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서울경제 리더스포럼에서 ‘제3 지대 신당 창당’의 배경을 이같이 밝혔다. 양 의원이 만드는 신당의 명칭은 ‘한국의희망’이다. 그는 26일 중소기업중앙회 KBIZ홀에서 창당 발기인 대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치 쇄신 행보에 나설 예정이다.
양 의원은 단순히 정치적 이해관계나 권력 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해온 기성 정당들과는 차별화된 문화를 토대로 대한민국 정치를 바로 세우겠다는 방침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정치의 기초가 되는 훌륭한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정치인 사관학교’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양 의원은 “9월부터 100명 규모의 정치 학교를 ‘사비’로 시작한다”며 “정당이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토론의 기술 등도 교육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당 ‘한국의희망’에 대해서는 백색의 ‘도화지’에 비유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양 의원은 “신당의 출발이 어떤지를 목도했으면 좋겠다”며 “완전히 새로운 기초에서 만들어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양 의원이 신당을 창당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역 의원들 중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양 의원은 “국회의원의 관심보다는 국민의 관심을 받는 게 더 중요하다”며 이들의 ‘동업’ 제안을 거절했다. ‘정치인’의 빈자리는 과학기술 전문가들과 잠재력 있는 청년들로 메운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조만간 발표될 창당 공동 발기인 명단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과학기술 전문가들과 청년층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의원은 “(정치권에) 과대 대표된 법률가·운동권과 과학기술 인력은 시야 자체가 다르다. 법률가나 운동권은 사건이 있어야만 판단이 서지 않느냐”면서 “신당 창당은 운동권에 대한 ‘반기’가 아닌 과학기술 인력들도 ‘균형 잡힌 대표성’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삼성 최초의 ‘여상(여자상업고등학교)’ 출신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양 의원은 2016년 당시 문재인 대표의 인재 영입으로 정치권에 들어섰다. 이후 민주당 최고위원을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등을 지냈다. 2021년 탈당한 뒤 복당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민주당이 밀어붙이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동의할 수 없어 지난해 복당 신청을 포기했다. 양 의원은 “검수완박으로 인해 사회 최약층의 이익은 없어지게 되고 고쳐야 하는 법만 31개인데 당내에서는 법의 내용은 안 보고 ‘당론인데 (재선) 출마하지 않을 것이냐’는 말만 나왔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양 의원은 무소속이 된 후 국민의힘의 제안을 받고 반도체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양 의원은 신당 창당이라는 독자 노선을 택했다. 양 의원은 신당의 궁극적인 목표를 ‘과학기술 패권 국가 대한민국’이라고 밝혔다. 양 의원은 “대한민국이 추격 국가에서 선도 국가로 넘어가는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비전’”이라며 “낡은 정치에서 과학 정치, 특권 정치에서 생활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네덜란드가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기술로 ‘슈퍼 을(乙)’이 됐듯 우리나라도 ‘킬러 기술’ 하나로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 의원의 신당 창당을 시작으로 정치권의 ‘제3 지대’ 움직임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거대 양당’인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도가 30% 박스권에 머무는 데다 이들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무당(無黨)층 비중이 30%에 육박하는 점이 이러한 움직임을 더욱 부추기는 모습이다. 한국갤럽의 6월 4주 차 여론조사에서 무당층은 29%에 달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금태섭 전 의원은 지역 순회 간담회를 예고하며 올 9월 신당 창당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정의당의 류호정·장혜영 의원이 이끄는 ‘세 번째 권력’도 당 지도부의 ‘재창당’과는 별도의 행보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