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경제가 눈에 띄는 회복세를 보이지 않자 야당 등이 경기 침체와 민생 위기를 막기 위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주장하고 있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인 김홍기 한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2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추경을 하면 자산 가격 버블 증가와 국채 발행에 따른 시중금리 상승, 기업 자금난 등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서 정부 지출이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졌다”며 “추경 재원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지만 추경의 경기 부양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윤석열 정부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 개혁에 집중할 때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정부는 우리 경제가 올 하반기로 갈수록 개선되는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자신해왔는데.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고 본다. 세계 각국이 지난 3년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 확대와 금융 완화 정책을 폈다. ‘유동성 잔치’의 후유증으로 4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지금은 미국·유럽 등 대부분의 나라가 통화정책 정상화, 즉 금리 인상 기조에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경제가 예상만큼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도 기대에 못 미친다. 우리나라 내수는 특별히 경제를 추동할 동력을 발견하기 힘들고 부동산 버블에 따른 가계 부채 문제가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올 하반기 경제가 기저 효과로 기술적 반등은 하겠지만 크게 좋아질 것이라고 예측하기에는 아직 근거가 미약하다. 다만 지금이 추경을 편성할 만큼 경제 위기 상황인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내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가 1.75%포인트다. 과도하고 지속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대부분의 경제 현상은 선형적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문지방 효과(threshold effect·자극이 일정 한도를 넘어서면 새로운 현상이 등장)’라는 용어가 있다. 이 정도의 금리 차이라면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발생할 때 급속한 자본 유출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일본을 제외하면 주요 선진국들이 금리를 인상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 금리를 낮추면 자금이 생산적 부문으로 유입될 가능성은 없고 자산 가격 상승과 가계 부채 악화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년여 동안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민간 주도의 역동적인 경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규제 완화, 기업 투자, 신산업 육성,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 등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 정권과 달리 포퓰리즘을 지양하고 민간의 창의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방향이나 지향점은 매우 바람직하다. 다만 아직 기대만큼 개혁 내용이나 진행 속도가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비용과 부담이 수반되지 않는 개혁은 없다. 이 때문에 개혁이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 ‘구성의 오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금 개혁의 경우 대다수 국민들이 제3자적 입장에서는 찬성하더라도 막상 본인의 수급액이 줄어들거나 납부액을 더 내야 한다고 하면 반발하기 마련이다. 국민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개별적·합리적으로 행동하면 국민 경제 전반에는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친다. 개혁으로 얻는 이득보다 갈등 비용이 더 크면 개혁은 실패하거나 미진하기 마련이다.
-윤석열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보다 더 세밀하고 정교하게 추진해야 한다. 개별적 행위와 국가 이익 간 구성의 오류를 극복하고 조정할 수 있는 정부 역량이 필요하다.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제다. 미루면 미룰수록 미래는 더 암담하고 보다 많은 고통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특히 개혁의 당위성이나 필요성뿐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과 과정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사회적 합의의 길을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진영 논리가 지배하는 현재 정치 상황에서 가능할지 매우 비관적이어서 안타깝다.
-정부가 노동 개혁에 시동을 걸면서 노정 및 노사 관계가 더 악화하고 있는데.
△다른 개혁과 마찬가지로 로드맵이 정교해야 한다. 노동 개혁은 노동의 유연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해고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정부가 인내심을 가지고 타협해야 한다. 대통령의 입에서 ‘건폭(건설노조 폭력)’ 발언이 나올 필요는 없다. “너는 나쁜 놈이야” 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특히 대통령실 참모진이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한다. 노조와 밤을 새우더라도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고 대화해야 한다.
-정부가 앞으로 가장 역점을 둬야 할 정책 과제는 무엇인가.
△저성장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 혁신이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지적대로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보수·진보 정부 상관없이 5년마다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씩 하락했다. 인구·노동력 감소, 투자 자본 감소, 기술 진보 둔화, 성장률 하락 등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핵심 해법은 창조적인 인적 자본 축적이다. 과거 우리나라 고도성장의 주요 동력은 인적 자본 축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창조적인 인재 양성에 실패하고 있다. 특히 대학이 지난 15년간 등록금 동결 등 포퓰리즘 정책 탓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초·중등교육 지원 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급증하면서 지방에는 승마장, 골프 연습장 등을 구비한 초등학교가 많다. 반면 지방대학은 완전히 거지로 만들어놓았다. 건물만 번지르르하고 교수진과 기자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좀비’ 지방대학들이 넘쳐난다.
-한중 경제가 동반자적 성장 관계에서 점차 경쟁 관계로 바뀌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과 글로벌화 진전으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등 많은 혜택을 입었다. 그러나 과거 10여 년간 중국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졌다. 꼭 중국이 아니어도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경제 안보 측면에서 상당한 위험 요소다. 더구나 미국이 대(對)중국 ‘디커플링(탈동조화)’이나 ‘디리스킹(위험 경감)’ 정책을 펴면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이 더욱 필요해졌다. 중장기적으로 인도·동남아 등의 시장 개척이나 시장 다변화 노력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다자간 무역협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미중 간 패권 다툼의 여파로 기존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이 한계에 부딪쳤다.
△세계가 신냉전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디커플링 고착화와 글로벌 가치 사슬 재편이 불가피하다. 이 같은 지정학·지경학적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경제 안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경제 안보의 개념을 ‘지속 가능한 번영의 위험 요인을 식별하고 제어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국제 질서의 변화, 지정학·지경학적 위험, 군사적 대치와 갈등, 기후변화 등이 위험 요인이다. 21세기 신냉전 시대에는 강대국 간 갈등이 군사적 수단보다는 경제적 수단을 통해 표출되는 양상을 띤다. 또 세계 경제의 높은 상호 의존성으로 인해 동맹의 경제 안보가 얼마든지 충돌할 여지가 있다.
-한미 간 경제 안보도 상호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가.
△미국의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여파로 우리나라 반도체·전기차 등이 타격을 받고 있는 사례에서 보듯 한미 간 국익이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우리가 미국 편을 든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직 미국보다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더 높다. 중국 의존도를 급격하게 줄이면 조정 비용이 너무 크다. 차분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일관되게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강국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고 창의적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 정세를 정확히 분석하고 미래의 방향을 읽어 장기적 국익에 입각해 접근해야 한다.
-단기적 측면에서 한국 경제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
△미중 간 전략 경쟁에 따른 글로벌화 후퇴다. 중국과 미국은 우리에게 교역이나 상호 의존성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두 국가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중장기적 측면에서 우려되는 점은.
△출산율 저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 0.78명은 대표적 인구 감소 국가인 일본과 이탈리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인구 감소가 노동 공급과 자본 투자를 감소시키고 기술 혁신도 후퇴시킬 것이다. 일부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도 저출산 문제 해결에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현금 지원, 보육, 교육 등 복합적인 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으로서 포부가 있다면.
△지금 한국 사회는 확증 편향과 진영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한국경제학회가 중립적 입장에서 집단 지성을 모아 중요한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He is…
1960년 충북 현도 출생으로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남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달 14일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에 선출됐다. 중소벤처기업부 자체평가위원장, 규제개혁심의위원장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장, 재정정책자문위원회 위원,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 APEC소기업 의장, 한국국제경제학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