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쿵이지

한 중국 대학생이 올린 ‘시체 졸업 사진’. 자료=CNN한 중국 대학생이 올린 ‘시체 졸업 사진’. 자료=CNN







최근 중국 대학생 사이에서 자학적인 ‘시체 졸업 사진’이 유행하고 있다. 이들은 졸업식 가운을 입은 채 얼굴을 땅에 늘어뜨리거나 난간·간판·의자 등에 시체처럼 매달린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졸업식이 내 장례식”이라는 것이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맞은 중국 ‘쿵이지(孔乙己)’ 세대의 한 단면이다. 쿵이지는 중국 근현대 작가 루쉰의 동명 소설 속 주인공이다. 청나라 말 과거시험에 급제하지 못해 좀도둑질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지식인’이라며 자존심만 센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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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학 졸업장 때문에 쿵이지 신세가 됐다”는 글이나 영상이 잇따르면서 ‘쿵이지 문학’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서 육체노동을 꺼리는 자신의 신세를 고학력 실업자인 쿵이지에 빗댄 것이다. 중국의 5월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0.8%로 4월의 20.4%에 이어 한 달 만에 사상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쿵이지는 2000년 이후 출생자를 뜻하는 ‘링링허우(零零後)’ 세대이다. 어린 시절 고도성장의 혜택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중화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이들 공산당 핵심 지지층의 취업난이 장기화하면 소비 위축으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사회 불만을 키우고 시진핑 정권의 지지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농촌행 독려, 노점 경제 활성화, 인민해방군 채용 증가 등을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대학 진학률이 80%에 이르는 젊은층의 반응은 싸늘하다. 최악의 청년 취업난은 코로나19 충격과 경기 둔화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늘리기보다 기존 인력 활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진핑 정부가 내세운 ‘공동부유(共同富裕·국민이 함께 잘 사는 나라)’ 정책의 영향도 크다. 2021년부터 빅테크 기업과 고소득층을 규제하자 청년 고용의 약 40%를 차지하는 사교육·정보기술(IT)·부동산 기업의 채용이 크게 위축됐다. 좌파 이념에 매몰된 국가 주도 정책이 자승자박이 된 셈이다. 국가가 민간 경제활동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생산성과 창의성·혁신을 저해하고 청년들의 미래도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최형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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