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새마을금고 위기’와 정부 불신





파멜라 린든 트래버스의 소설 '메리 포핀스'에는 ‘뱅크런’ 얘기가 나온다. 은행 직원인 뱅크스씨의 아들 마이클은 아빠 직장에 놀러갔다가 은행 회장을 만난다. 마이클은 자신의 용돈을 회장이 예금하라며 가져가려 하자 “내 돈 돌려줘’라며 울부짖는다. 이 말은 은행에 있는 고객들이 무더기 예금 인출에 나서게 만든다.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한 아이의 외침이 예금자의 불안감을 자극해 아무 이유 없이 ‘뱅크런’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 얘기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예금자의 단순한 불안감 때문에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18세기 초 은행들은 뱅크런 때 예금자들의 불안감이 자연스럽게 잦아들도록 ‘시간끌기’라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찰스 킨들버거의 저서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에는 1720년대 영국의 영란은행이 뱅크런을 막기 위해 예금자가 인출을 요구한 금액을 모두 동전으로 지급하는 식으로 시간을 끌었다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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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금융 시스템에서는 고객의 불안감을 예금자보호제도를 통해 해소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5000만원까지 예금을 보호한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예금자보호제도가 도입된 후에도 뱅크런은 꾸준히 일어났다. 올해 초 발생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대표적이다.

최근 새마을금고에서도 뱅크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5일 긴급히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새마을금고의 ‘안전함’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새마을금고의 현재 연체율이 어느 수준인지, 자금이 얼마나 이탈하고 회복됐는지 등에 대한 물음에는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예금자 입장에서는 정부가 무언가 감추려는 듯한 의심이 들만 하다. 그래서인지 정부의 장담에도 여전히 금고로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인터넷 재테크 카페에도 불안하다는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예전에 만난 한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시장이 불안할 때는 있는 그대로 말을 하기보다는 숨길 필요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 순간에 금융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금융 시스템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예금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현재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예금자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먼저다. 외환위기 때 구제금융을 받지 않겠다고 하다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말을 바꾼 정부를 우리 국민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박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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