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애플 비전프로 특수D램 공급처에…SK하이닉스 단독 낙점 [biz-플러스]

AR기기 최적화 모델 '독점 공급'

HBM 이어 신시장 점유율 높여

스마트폰 D램보다 입출구수 8배

데이터 이동속도 2배 가까이 빨라

MR 적합한 특수 D램 합격점 받아

비전프로.비전프로.




애플 비전프로용 특수 D램이 생산되는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 전경. 사진제공=SK하이닉스애플 비전프로용 특수 D램이 생산되는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 전경. 사진제공=SK하이닉스






애플의 차세대 증강현실(AR) 디바이스 ‘비전프로’에 SK하이닉스(000660)의 특수D램이 독점 공급된다.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이어 새롭게 열리는 시장에 필요한 응용 D램을 고객사에 발 빠르게 공급하면서 관련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비전프로는 당장 가격이 높게 책정돼 생산량이 많지 않을 전망인데 앞으로 가격이 낮아지고 생산이 증가하면 SK하이닉스도 AR 기기 반도체 시장 지배력을 크게 키울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애플이 지난달 야심 차게 공개한 AR기기 비전프로에 들어가는 특수 D램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 D램은 애플이 비전프로용으로 새롭게 개발한 ‘R1’이라는 칩과 연동한다. R1은 AR기기 곳곳에 장착된 카메라·센서가 인지한 외부 정보를 연산하는 프로세서다. 사람이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시간보다 8배나 빠른 12ms(밀리초·0.012초) 안에 새로운 화면을 띄우는 역할이다.

이런 기능을 구현하려면 바로 옆에서 연산을 보조하는 D램 역시 변화해야 해 기존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모바일용 D램 속도로는 한계가 있다. SK하이닉스는 애플의 요구 조건에 맞춰 R1 동작에 최적화한 D램을 제공했다. 각종 데이터를 메모리 밖으로 전달하거나 내부로 가져오는 통로(입출구·IO) 수를 대폭 늘리면서다.

업계에 따르면 특수 D램은 기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LPDDR5X D램보다 입출구 수가 8배 많은 512개다. 입출구 수가 늘어난 만큼 데이터의 이동이 원활해지면서 일반 D램보다 속도가 2배 가까이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D램은 R1칩 바로 옆자리에 붙어 하나의 칩처럼 움직인다. 두 칩 간 정보 공유 거리가 기존보다 훨씬 짧다는 얘기다.

SK하이닉스의 특수 D램 단독 공급은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메모리 라이벌 업체들이 진입하지 못한 영역을 가장 먼저 차지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인공지능(AI) 시장에서 크게 주목되는 HBM에서 50% 안팎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주목하는 미래 먹거리 시장에서 독특한 메모리 응용 기술로 이정표를 제시하며 기술 강자의 면모를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이번 애플과의 협력건과 관련해 “고객사 정보는 확인해줄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새로운 컴퓨팅의 시작을 알리는 날입니다.”



올 6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애플 본사에서 야심작 ‘비전프로’를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쿡 CEO의 발언처럼 애플이 혼합현실(MR)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며 내비친 각오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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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와 최초의 스마트폰 ‘아이폰’ 발명으로 세계 정보기술(IT) 패러다임을 통째로 뒤집은 회사다. 이들은 비전프로의 새로운 공간 컴퓨팅으로 세상을 한 번 더 놀라게 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애플은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7년간 1000명 이상의 최고급 인력을 투입했다. 이들은 비전프로에 그간 노트북 PC, 스마트폰에서 쌓았던 첨단 기술 노하우를 집약했다.

비전프로 구현을 위한 고민의 흔적이 드러나는 곳은 단연 ‘반도체’다. 애플은 노트북 PC 등에 쓰였던 자체 연산장치인 M2를 비전프로에 탑재했다. 특이한 점은 ‘R1’이라는 새로운 칩도 함께 장착해 ‘듀얼칩’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R1의 핵심 포인트는 저지연성이다. 그간 MR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불만을 느꼈던 부분은 ‘디지털 멀미’ 현상이다. 주변 상황 인지→신호 연산→새로운 이미지 출력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기기 착용자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어지러움을 느낀 것이다. 애플은 R1으로 비전프로가 사람의 눈 깜빡임보다 8배 더 빠른 0.012초 안에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특유의 고급 칩 설계 기술로 사용자의 불편함을 최소화한 셈이다.

SK하이닉스는 R1을 뒷받침하는 특화 D램으로 완벽한 ‘단독’ 파트너십을 보여줬다. R1 옆에 밀착해서 필요한 연산 정보를 늦지 않게 공수하는 변형 D램으로 애플에 합격점을 받은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정보 입출구 수를 기존 모바일용 D램보다 8배 늘려 지연성을 최소화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저지연성을 위해 입출구 수를 늘린 메모리라고 해서 이러한 형태의 특수 칩을 ‘LLW(저지연성·와이드 I/O)’ D램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애플의 R1 칩과 SK하이닉스 D램이 ‘팬아웃 웨이퍼 레벨 패키지(FOWLP)’ 형태로 결합하는 것도 특징이다. 두 칩이 별도 기판 없이 결합해서 하나의 반도체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기판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칩 간 정보 전달 거리가 가깝고 생산 비용까지 절감하는 장점이 있다. 칩 간 결합은 세계 파운드리 1위인 TSMC에서 이뤄질 것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의 비전프로용 특수 D램 생산 물량은 세계 메모리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큼 거대하지 않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비전프로를 내년에 본격 출시한다고 해도 연간 최대 100만 대를 생산할 것으로 내다본다. 대당 1개의 특수 D램이 탑재된다고 가정할 경우 2Gb(기가비트) 환산 기준 연간 1000억 개의 칩이 유통되는 전체 D램 시장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다.

다만 이번 애플 단독 공급 사례는 새로운 D램 응용처를 찾은 뒤 아주 기민하게 움직이는 SK하이닉스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SK하이닉스가 새로운 D램 응용처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최근 업계의 화두가 된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대표적이다. 올해 SK하이닉스는 D램을 12단으로 쌓아 용량과 정보 이동 속도를 극대화한 ‘HBM3’ 제품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 기술로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회사이자 인공지능(AI)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미국 엔비디아와 끈끈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HBM 역시 전체 메모리 시장 매출에서 일부분을 차지하는 영역이지만 SK하이닉스는 세계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휘어잡으면서 명실상부 메모리 기술 리더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극심한 메모리반도체 불황을 겪고 있는 SK하이닉스가 HBM 매출이 증가하면서 3분기 반등을 꾀하는 등 회사 매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가 신규 시장에서 성과를 내면서 D램 시장에서 4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한 1위 삼성전자와 2위 SK하이닉스의 기술 대결도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기술만 놓고 봤을 때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에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 또한 나온다.



강해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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