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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계열사 물량 50% 이하로 낮춰 경쟁 활성화

■대기업 퇴직연금 몰아주기 손본다

현대차·삼성그룹 계열사 비중

각각 87%·66%로 의존도 커

근로자 이익 침해 우려 크지만

금융 계열사에 쏠림 현상 여전

경쟁 통해 수익률 제고 기대





대기업이 직원들의 퇴직연금을 증권·보험·은행 등 계열 금융회사에 몰아주는 관행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제동을 건 것은 근로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해 올해 400조 원 규모로 성장하는 퇴직연금 시장 경쟁을 활성화하려는 포석이다. 정부는 연금 사업자 선택이 수익률 중심으로 이뤄지면 12일부터 시행되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와 함께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에 시너지를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당장 사업자들 간 자율협약대로 계열사 비중이 50% 밑으로 떨어지면 10조 원 넘는 신규 자금을 확보하려는 은행·증권·보험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률을 높이려는 노력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11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퇴직연금 사업자들 중 적립금의 계열사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현대차증권(001500)이다. 올 1분기 확정급여형(DB) 기준 현대차증권은 적립금 13조 9940억 원 중 계열사 물량이 86.8%에 달했다. 삼성생명(032830) 역시 총 적립금 36조 8320억 원 중 24조 4105억 원이 계열사에서 나와 비중이 66.3%에 달했다. 아울러 삼성화재(000810)(39.4%)와 하나증권(24.4%), KB증권(17.9%), 한화생명보험(15.5%) 등도 퇴직연금 적립금의 계열사 의존도가 높았다.



퇴직연금 확정기여(DC)형의 계열사 가입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계열사 의존도는 만만치 않았다. 현대차증권은 52.7%가 계열사 물량이었고 삼성생명은 12.6%를 보였다. 반면 직원 개인이 선택해 별도로 가입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경우 두 회사의 계열사 유치 실적은 전무해 대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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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집단이 계열 금융사에 퇴직연금을 몰아주는 것은 그간 꾸준히 문제로 제기됐다. 이에 금융권은 2015년 총 퇴직연금 적립금 대비 계열사 비중을 50% 이하로 낮추기로 자율협약을 맺었지만 강제성은 없다. 현대차증권의 경우 자율협약에도 참여하고 있지 않다.

금융회사들은 그간 계열사 간 거래가 시너지 증대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해 금융 당국과 정부도 어느 정도 이를 수용했지만 갈수록 ‘일감 몰아주기’식으로 쏠림 현상이 과해지자 주무부처인 고용부도 좌시할 수만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퇴직연금을 가장 잘 운용하는 사업자가 연금 운용을 맡기를 원하지만 그룹사의 이익이 앞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이 낮으면 근로자의 은퇴 자산은 그만큼 줄어들고 DB형 가입 기업도 수익률이 떨어지면 퇴직연금 지급 여력에 문제가 생겨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대차증권과 삼성생명의 DB형 운용 수익률은 올 1분기 기준 2.3%와 1.4%에 불과하다. 이는 경쟁사인 KB증권(3.2%)과 미래에셋생명(3%)에 크게 뒤처진다.

그룹의 후광이 적은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고용부의 점검 및 현장 조사를 기점으로 높았던 대기업 계열사의 벽이 허물어진다면 운용 실력으로 승부를 보는 경쟁 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증권과 삼성생명이 계열사 비중을 자율협약대로 50%로만 낮춰도 각각 5조 1622억 원, 6조 원의 자금이 새 운용처를 찾게 된다. 퇴직연금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계열사 물량 몰아주기는 시장 전체로 봐도 경쟁 제한과 경제력 집중 등에서 문제가 있다”며 “비중을 낮추면 왜곡된 시장구조를 바로잡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이번 점검에서도 마땅한 개선책이 나오지 않으면 직접 규제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19대 국회에서 직접적인 계열사 비율 규제 등을 담은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며 “유의미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강제적 규제책을 마련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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