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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끝도 정해져 있었던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생생보건] <3>

민주노총 夏鬪 일정에 맞춰 파업 진행

총파업 2주 마지막날 '현장 교섭' 전환

'14보건복지의료연대' 우려 표명에도

간호사 중심노조 19년 만에 파업 단행

더 큰규모 2차산별 총파업투쟁 엄포도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원들이 총파업 이틀째인 지난 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인력·공공의료 확충,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원들이 총파업 이틀째인 지난 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인력·공공의료 확충,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초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으로부터 7월께 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투쟁’ 일정에 맞춰 진행되는 사안이라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최근 만난 정부의 한 관계자는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은 이미 오래 전에 정해져 있었던 일정에 따른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보건의료노조가 기한을 정해놓지 않고 파업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시작도, 끝도 민주노총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그의 예상은 상당 부분 적중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달 산별 교섭이 타결되지 않으면 무기한 총파업을 7월 13일부터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2주 간의 민주노총 ‘정권 퇴진’ 총파업 집회 마지막 날인 15일에는 산별 총파업을 종료하고 현장교섭·파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알렸다.

무엇을 위한 파업이었나


보건의료노조는 2004년 의료민영화 저지 및 주 5일제 관철을 주장하며 파업을 벌였다. 19년 만에 진행된 이번 총파업에서 보건의료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대 5 제도화 △적정인력 기준 마련 △의사 인력 확충 △공공의료 확충 △코로나19 전담병원 정상화를 위한 회복기 지원 △임금인상 10.7% 등 정당한 보상과 9.2 노정합의 이행 등 7가지였다.

사실 이는 임금인상 10.7% 정도를 뺀 나머지 요구사항을 나열해 놓고 그 위에 ‘정부 중점 추진 과제’라는 제목을 붙여 놓아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 요구사항이다. 다시 말해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이미 추진 중인 정책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했다는 얘기다.

실제 복지부는 간호인력지원종합대책 등을 통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천명했고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대5도 목표로 내걸고 있다. 의사 인력 확충을 위해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논의 중이며 적정인력 기준도 마련 중이다. 공공의료 확충도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통해 추진하고 있다.

결정적 문제는 세부 사항 속에


여기까지만 언급하고 말면 보건의료노조가 왜 따가운 여론에도 불구하고 총파업을 단행했는지, 정부는 왜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엄정 대응 기조를 유지했는 지 이해하기 힘들다. 양측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는 디테일에 있다.

일례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는 ‘2026년까지’가 디테일이다. 보건의료노조 측은 문재인 정부가 2026년까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전면 확대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을 앞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실적 문제와 부작용을 고려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 차관은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도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공감을 한다”면서도 “다만 보건의료노조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전면 시행하라’는 요구를 하는데 여러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면 시행을 위해서는 간호사가 1만 8000명 필요한데 1년에 간호대를 졸업하는 학생이 2만 3000명”이라며 “당장 간호대학 졸업 인원을 2배 가까운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게 단기간에 쉽게 되는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서울, 수도권 중심 확대 시 지방의료 붕괴 우려와 재정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박 차관은 “정부는 비수도권부터 단계적으로 시행을 하는 게 맞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추진을 하고 있다”며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시행 한 항목만 해도 약 2조 7000억 원의 돈이 들어간다”고 언급했다.

간호사 대 환자 1대 5로 보장의 디테일은 ‘근무조별’에 있다.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1대 5를 목표를 정책을 입안하고 있지만 근무조별 1대 5의 경우 행정적으로 적용하기 힘든 데다 그만큼의 인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단기간에 시행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1대 5로 맞춰 놓으면 병원이 자체적으로 1대 5로 근무조를 운영하는 게 맞지 않느냐”며 “정부가 병원의 근무조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14보건복지의료연대 우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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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에는 대한의사협회와 간호조무사협회 등 14개 의료 관련 단체가 참여한 '14보건복지의료연대'가 이번 총파업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14연대는 “보건의료 종사자의 존재 이유는 국민 건강과 생명 수호에 있다”며 “환자를 불안에 몰아넣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파업보다는 정부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현안을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 13일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에 노조 요구사항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 13일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에 노조 요구사항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피해는 오롯이 국민 몫


결국 파업으로 인한 불편은 국민이 겪었다. 13일과 14일 예약 없이 병원을 찾았던 일부 환자와 보호자는 발길을 돌려야 했고 적지 않는 수술도 미뤄졌다. 입원 환자 중 일부는 퇴원을 앞당겨 해야만 했다. 입원, 외래 진료가 취소되는 일도 발생했다.

‘국립암센터 100건 수술 일정 연기, 입원 외래 진료 2000건 취소’ 등 수치만 봐서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국민 불편은 한 사람 한사람의 사연 속에서 느낄 수 있다. 13일 거동이 불편한 노모와 함께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한 50대 하 모 씨는 “어머니가 감기 기운이 있어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봤는데 호전되지 않아 큰 병원을 가보라는 소견서를 들고 왔다”며 “예약 없이는 오늘 진료를 볼 수 없다고 하는데 비도 오는데 휠체어를 끌고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다”며 푸념했다. 12일 요로결석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 정 모(59) 씨는 “어제 수술을 했기 때문에 원래 내일까지 입원했어야 하지만 오늘 퇴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


보건의료노조는 14일 ‘산별총파업 종료하고 현장교섭·파업으로 전환’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결정 사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복지부와도 다시 한번 정책 협의(설명회)를 통해 핵심요구에 대해 원칙적 동의와 함께 이후 추진에 대한 큰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고 평가했다.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투쟁본부는 지난 6개월 간의 총력투쟁과 2일 간의 산별총파업투쟁을 통해 보건의료노조 요구를 충분히 사회공론화했고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면서 의료현장의 인력대란과 필수·공공의료 붕괴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과 시행 로드맵을 마련하겠다는 정부 측의 입장을 확인한 점을 성과로 평가한다.

다만 환자 불편이 지속되는 것과 파업이 장기화될 시 환자안전에 심각한 우려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과 파업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노정간에 대화가 진정성 있게 진행해 온 결과, 미세하게 남은 몇 가지 쟁점 자체가 단순하게 언제 시행한다 안한다고 확정하기 어려운 정책의제라는 점 등을 고려해 이틀간의 산별총파업투쟁을 일단 종료하고 현장교섭·투쟁으로 전환하기로 대승적 결단을 내리고 이후 추가로 심도깊은 정책협의를 통해 구체화 할 예정임을 결정했다.

우리 노조의 이러한 대승적 결정에도 불구하고, 향후 충분한 정책 협의를 하고 분명한 근거가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시행을 늦춘다면 보건의료노조는 다시 한번 이번 1차 산별총파업투쟁 보다 더 큰 규모의 2차 산별 총파업투쟁에 돌입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하는 한편, 보건의료노조가 어렵게 산별총파업투쟁을 종료하기로 결단한 만큼 사용자와 복지부도 성실한 대화와 실질적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일부 노조는 독자 파업


보건의료노조가 산업별 총파업 해제를 선언한 가운데 부산대병원 노조는 16일 현재까지 파업을 이어갔다. 이날 보건의료노조 부산지부에 따르면 부산대병원 노조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업무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고 나흘째 파업을 벌였다.

부산대병원 노조는 올해 임단협 교섭 사항 외에도 '비정규직 직고용'의 핵심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무기한 파업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앞으로 독자 파업에 나선 부산대병원 노조를 지원할 계획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을 포함한 지도부는 이날 부산대병원에 산별노조 차원의 중앙상황실을 차렸다. 보건의료노조 중앙, 본부, 지부 간 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 측은 "부산대병원의 인력 부족과 이로 인한 환자 피해 사례, 불법의료 실태 등을 비롯해 병원 사용자 측의 불성실 교섭과 장기파업 유도 행위와 관련한 진실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부산대병원은 입원 환자를 받지 않고 있으며 파업 장기화에 대비해 수술 일정 등의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임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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