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부산에 기항 중인 미국 해군의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을 직접 찾아 승함해서 내부를 둘러봤다. 건국이래 국군통수권자인 한국대통령으로서 최초이자 외국정상으로도 첫 탑승이다. 이는 한미 동맹의 강력한 확장 억제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한반도 내 북한의 비대칭 전력 우위가 상실됐다는 상징성을 북한에게 전달하려는 메세지를 성격이 강하다.
자신들에 큰 위협이 되는 미국의 전략자산인 핵탄두가 탑재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 SLBM 20여기를 실을 수 있는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의 한국 기항은 북한에게 초조함과 다급함을 더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SSBN 입항 다음날 새벽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2발을 기습적으로 발사했다. 새벽 발사는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비행 거리는 약 550㎞로 발사 지점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인 554㎞(구글 지도 기준)와 거의 일치해 해군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군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을 겨냥한 ‘맞춤형 무력시위’로 보인다.
미 전략핵잠수함의 한국 기항으로 한국의 독자적 핵추진 잠수함에 도입 필요성과 그 가능성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상황이다. 2017년 4월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핵잠수함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핵잠수함을 도입하겠다는 의지도 천명한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핵잠수함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전략무기인데다, 한미 미사일 지침에 따라 800km에 묶여 있는 탄도미사일 사거리의 철폐와 함께 핵잠수함 개발 여부는 ‘마지막 안보 족쇄’로 불린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는 2030년대 초·중반까지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3000∼4000t급 잠수함 9척 가운데 3척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을 시도했다. 3000∼4000t 급 잠수함(일명 장보고-III) 9척의 건조 사업의 경우 2018년 진수한 1번함(도산안창호함·3000t급)을 비롯해 6번함까지는 재래식 추진(디젤엔진과 연료전지) 방식으로 결정됐기 때문에 나머지 7∼9번함(4000t급)을 핵추진으로 제작하는 방안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2022년 5월) 핵잠수함 도입이 공식화 하고 사업에 착수할 경우 2030년대 초반에 실전 배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판단이지만 2023년 현재 감감무소식이다. 미국의 반대라는 국제정치학 명분 등 넘어야 산이 많은 탓이다.
핵추진 잠수함의 가장 큰 장점은 조용하게 빠른 속도로 장기간 잠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디젤잠수 같은 재래식잠수함은 배터리를 이용해 조용히 움직여도 배터리가 떨어지면 바다 표면 가까이 올라와 디젤 엔진을 다시 가동해 충전해야 한다. 하루에 한번 정도 이같은 스노클링이 필요한다. 이 때문에 공기를 빨아들일때 쓰는 스노클이 레이더에 걸릴 수 있고, 엔진이 돌아가는 소음은 적 수상함이나 잠수함에 탐지에 노출되기 쉽다. 공기불요추진시스템(AIP)을 장착한 신형 잠수함도 물 속에서 최대 2주 정도 밖에 작전이 안된다.
반면 핵추진 잠수함은 원자로에서 나오는 넉넉한 동력을 활용해 스노클링이 필요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전기로 물을 분해해 산소를 무제한으로 얻을 수 있고, 바닷물을 담수화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핵연료가 떨어지기 전까지 물 위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승조원의 사기 등을 감안해 보통 90일에서 110일 정도 작전을 한다.
게다가 3500t 규모 잠수함을 기준으로 디젤 잠수함은 엔진, 발전기, 축전지가 차지하는 공간이 50%를 차지하는데, 핵추진 잠수함은 33%에 그쳐 공간활용성이 매우 높아 같은 규모라도 핵추진 잠수함에 무기와 식품 등을 적재할 공간 활용도가 훨씬 높다. 따라서 핵추진 잠수함을 디젤 잠수함보다 큰 규모로 제작한다면 12~16개의 수직발사관을 탑재하고, 6~8개의 어뢰 발사관을 갖추는 등 디젤 잠수함보다 훨씬 뛰어난 공격력을 가질 수 있다. 6명이 탑승해 ‘수중택시’로 불리는 ‘수송용 추진기’(SDV)를 다수 장착하면 ‘특수전 임무’ 지원도 가능해진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원자로의 소음 단점도 저감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해결돼 가고 있다. 1959년 취역한 미 해군 최초의 탄도미사일 장착 핵잠수함(SSBN) ‘조지 워싱턴호’의 수중방사소음(URN)은 155dB 수준으로, 최신 디젤 잠수함의 소음이 100~110dB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1981년부터 도입하기 시작한 SSBN ‘오하이오급’은 100dB 수준으로 소음 크기를 줄였다. 속력은 디젤 잠수함과 비교해 최대 2배까지 올릴 수 있는데도 소음은 비슷하다. 적 추적과 어뢰 회피기동에 유리해지 셈이다. 최신 공격형 핵잠수함(SSN) ‘버지니아급’도 1990대 개발 당시엔 소음이 115dB을 넘었지만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110dB 아래로 소음이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핵추진 잠수함의 강력함은 무엇보다 은밀성과 공격 및 수중작전 능력에서 재래식 잠수함이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다. 핵추진 잠수함은 물위로 부상할 필요가 없어 이론적으로 사실상 무제한 수중작전이 가능하고, 잠항 속도도 디젤 잠수함(시속 16∼17km)보다 최대 3배가량(시속 46km) 빠르다. 바다 속에서 비밀리에 SLBM을 실은 북한 잠수함을 장시간에 걸쳐 감시 추적하는 동시에 유사시 북한 수역 근처에서 장기간 대기하다가 핵·미사일 시설과 지휘부 등 핵심 표적을 정밀하게 타격한 다음 조용하고 신속히 빠져나올 수 있다,
단적으로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때 영국의 핵잠수함은 1만4400km 떨어진 포클랜드 해역에 10여일 만에 도착해 아르헨티나 해군 순양함을 격침시켜 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반면 함께 출발한 재래식 잠수함은 5주나 걸려서야 현장에 도착해 핵추진 잠수함의 진가를 입증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도입하는 걸 놓고 사실상 ‘핵무기’가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한국은 핵무기를 제작 및 보유할 수 없기 때문에 핵잠수함도 도입이 불가하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대목이 있다. 전략핵 잠수함(SSBN)과 핵추진 잠수함(SSN)을 혼동하다는 점이다. 전략핵잠수함은 핵추진 잠수함에 핵탄두를 실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다량으로 탑재하고 있다. 미국의 오하이오급(1만9000t), 러시아의 타이푼급(2만6000∼4만8000t), 중국의 진급(1만1000t)처럼 최소 1만 t 이상의 ‘덩치(배수량)’에 히로시마 원폭(20kt·1kt는 TNT 1000t의 파괴력)보다 수천 배 위력이 센 핵무기를 싣고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핵추진 잠수함은 다르다. 재래식 탄두가 장착된 SLBM이나 순항미사일을 탑재할 뿐 핵공격 능력이 없는 ‘비핵무기’로 분류된다. NPT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핵무기 제작에는 90% 이상 농축한 고농축우라늄이 필요하지만 핵무기를 만들 수 없는 저농축우라늄(농축도 20% 미만)을 핵연료로 이용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특히 핵추진 잠수함의 운용 목적에 주목해야 한다. 핵미사일을 실은 전략핵잠수함(SSBN)은 미국의 오하이오급(1만8000t급), 러시아의 타이푼급(4만8000t급) 등은 수십발의 탄도미사일을 탑재하고 몇달씩 물 속에 머물며 작전을 펼친다. 적국의 전략핵잠수함을 견제할 대체 전력무기가 필요한 것인데, 전략핵자수함을 잡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은 공격형 핵추지진잠수한(SSN)이다. 전략핵잠수함이 출항하면 파트너 처럼 따라다니며 작전을 함께 펼치는 것이 핵추진 잠수함이다.
한국이 핵잠수함(핵추진 잠수함) 을 갖게 된다면 가장 큰 임무는 북한의 고래급 탄도미사일 잠수함을 견제다. 여기에 주변국의 도발을 억제하는 역할도 가능하다. 예컨대, 중국과의 갈등이 고조됐을때 진해 해군기지 앞바다에서 한국형 원잠이 잠수하면 텐진·칭다오를 방어하는 중국 북해함대와 상하이를 방어하는 동해함대의 발을 묵을 수 있다. 하루 1000㎞를 이동하는 한국형 핵잠수함(핵추진 잠수함)이 어디서 떠올라 한국형 SLBM 미사일로 어디를 위협할지 알수 없는 전략무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핵잠수함 개발에 필요한 제반 기술을 모두 갖췄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잠수함 원조국인 독일에 버금가는 잠수함의 설계·건조 실력을 보유한 데다 핵잠용 소형 원자로 제작 기술도 충분히 축적하고 있다.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은 1400t급 잠수함 3척을 인도네시아에 수출하는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수출액이 1조 1600억에 이른다. 현재 우리의 기술로는 핵추진 잠수함 건조비용은 척당 1조6000억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한국형 책추진 잠수함의 도입에는 현재로선 미국의 동의가 절대적 동의가 필수다. 한미원자력협정 탓이다. 우리나라는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고농축 핵연료를 보유할 수 없다. 농축률 20% 이하인 저농축 우라늄도 군사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데 미국 정부와 의회가 예외를 인정해야 가능하다. 물론 어려운 것은 아니다. 최근 호주에 미국이 핵추진 잠수함 기술 이전을 결정했다. 평화적 목적과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안보,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내세우면 미국이 호주와 같은 케이스를 한국에 적용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회로도 있다. 호주와 핵추진 잠수함 건조 계약을 했던 프랑스가 미국에게 뒤통수를 맞은터라 한국형 핵잠수함 개발에 새로운 파트너가 될 수 있다.프랑스의 바라쿠타급 핵추진 잠수함이 한국형 핵잠수함인 4000t급 잠수함과 체급이 유사해 한국 해군으로서도 맞춤형 한국형 핵잠수함 개발 파트너로 프랑스가 매력적일 수 있다. 프랑스도 한국에 이 같은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우리나라의 잠수함 전력은 독일 209급을 개량한 장보고급(1200t) 9척과 214급을 바탕으로 AIP를 탑재한 손원일급(장보고Ⅱ, 1800t) 9척이 기반으로 구성돼 있다. 해군은 2018년 진수한 3000t급 도산안창호함을 시작으로 장보고Ⅲ 9척을 도입할 계획이다. 현재로서는 2028년까지 3600t급 4~6번함 도입이 마무리된다.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내세우는 현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그 다음에 만드는 4000t급 잠수함을 핵추진 잠수함으로 추진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