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교에서 죽었겠어요. 이유가 어찌 됐든 선생님이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서 그런 선택을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예요.”
저연차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의 초등학교에는 20일 오전부터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동료·선후배 교사들이 보낸 ‘학부모 갑질로 꽃다운 삶을 빼앗기셨습니다’, ‘선생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등 고인을 추모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수백 개의 근조화환이 학교 담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날 오전 학교를 찾은 대부분은 검은 옷 차림을 한 채 한 손에는 꽃을 들고 왔다. 이들은 말 없이 고인을 추모하는 메모지를 한참 바라보다 눈물을 감추며 발걸음을 돌렸다. 인천에서 고인을 추모하러 왔다는 30대 최 모 교사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추모하러 왔다”며 “같은 교사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눈물을 흘렸다. 송파구에서 근무한다는 고등학교 교사 송 모 씨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냐”며 “같은 교사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꽃다운 나이인데 안타깝다”며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손녀가 이 학교에 다닌다는 한 할머니도 정문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눈물을 흘리며 발을 돌렸다.
선배 교사를 추모하러 온 예비 교사도 있었다. 검은 옷 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발걸음 한 서울교대 2학년 김 모(22)씨는 “교사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소식을 듣고 왔다”며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먹먹히 말했다.
오후가 되자 추모 발길은 더욱 늘어났다. 체감 온도가 35도에 달하는 날씨에도 추모객들은 학교 담장을 둘러싸고 200미터 가량 학교 정문 쪽으로 길게 줄을 섰다. 동료 교사들을 비롯해 일반 시민과 아이들을 손을 잡고 온 학부모들도 있었다. 지난해 고인의 담당 학급 학부모였다는 김 모(35) 씨는 “초임 선생님임에도 아이들 한 명 한 명 사진을 찍어줄 만큼 세심하게 잘해줘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하나같이 좋아했다”며 “작년 1학년 아이들이 선생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들이 됐다고 생각하니 너무 맘이 아프다”며 울먹거렸다.
오후 3시께부터는 학교 담장을 둘러쌀 만큼 수백 명의 추모 인파가 몰려들자 경찰은 초등학교 앞 1개 차로를 막고 인파 통제에 나섰다. 한때 학교 내부 건물로 들어가 조문을 하려는 조문객을 학교가 막아서면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경찰과 추모객 사이에 갈등도 충돌도 있었다. 경찰이 정문 출입을 막자 추모객들은 “열어줘” 등 구호를 외치며 거센 항의를 했다. 교사들은 “우리는 조용히 추모만 하고 가는데 왜 막는 것이냐”, “무슨 권리로 막느냐”며 경찰과 언쟁을 벌였다.
해당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두고 다수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 상에는 이 교사가 학폭 업무를 담당하면서 학부모들의 지나친 민원에 시달렸다는 내용이 떠돌았다. 이에 학교와 교육청은 무분별한 억측을 삼가 달라는 입장이다. 학교 측은 고인이 학교 폭력 업무를 담당한 적이 없고, 논란이 되고 있는 해당 정치인의 자녀가 해당 학급에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입장문을 냈다.
하지만 이날 학교를 찾은 교사들은 이번 사건과 관계없이 교사들이 열악한 업무 환경에 놓여 있다고 호소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왔다는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아이가 탕수육을 찍먹으로 먹는데 왜 부먹으로 배식하냐고 항의하는 학부모도 있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선생님도 “고인에게 과도하거나 불합리한 업무가 있었는지는 수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모든 교사가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또 이런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목소리 높여 말했다.
특히 교사들은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학급 제자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을 언급하며 교권 추락이 심각하다고 입모아 말했다. 이날 추모 현장을 찾은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비슷하게 아이한테 맞은 경험이 있다”며 “아동 학대법 등으로 교사들이 손발이 묶여 제대로 된 지도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해 했다.
한편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경위는 수사 중”이라며 “제기된 의혹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수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