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가격 할인 폭을 제한한 도서정가제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도서정가제를 규정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22조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20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헌재는 "지나친 가격 경쟁으로 인한 간행물 유통 질서의 혼란을 방지함으로써 출판산업과 독서문화가 상호작용해 선순환하는 출판문화산업 생태계를 보호·조성하려는 이 사건 심판 대상 조항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종이책 매출이 감소하고 지역 서점의 매장 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는 인터넷 발달과 같은 사회 경제적 환경의 변화가 초래한 결과로 도서정가제와 같은 독과점 방지 장치가 없었다면 이와 같은 현상이 더욱 가속화됐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종이 출판물 시장에서 자본력, 협상력 등의 차이를 그대로 방임할 경우 지역 서점과 중소형출판사 등이 현저히 위축되거나 도태될 개연성이 매우 높고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적 다양성 축소로 이어진다"며 "가격할인 등을 제한하는 입법자의 판단은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봤다.
출판 후 일정 기간이 지난 도서는 자유롭게 할인하게 해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구간 도서를 가격할인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해 간행물 유통 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경쟁력 차이로 인해 신간 도서의 제작·판매가 위축될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형 서점에만 정가 판매 등 의무를 부과하면 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조차 가격할인을 제공할 여력이 없는 다수의 중소형서점은 시설과 서비스경쟁력에서는 대형서점에, 가격경쟁력에서는 강소형서점에 뒤처지는 등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경쟁환경 속에서 존폐의 기로에 내몰릴 개연성이 높다"고 했다.
전자책을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로 해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략적으로 종이출판을 포기하고 전자출판물만을 출판하는 형태가 증가할 것"이라며 이 경우 종이출판 산업과 오프라인 서점이 쇠퇴하는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서정가제는 과도한 가격 할인 경쟁을 막기 위해 정가의 10%까지, 마일리지 등을 포함해서는 최대 15%까지만 할인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둔 제도다.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한 A씨는 웹소설 작가로 온라인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 업체 설립을 준비하던 중 도서정가제로 인해 책 시장이 위축됐다며 2020년 헌법소원을 냈다.
청구인 측은 당시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한정하거나 출간 후 일정 기간이 지난 구간은 법 적용을 제외하는 등 대안이 있는데도 강력히 제한하기만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 관계자는 "도서정가제를 정한 출판법 규정이 간행물 판매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에 관해 판단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