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흑해 긴장감 속 印선 "쌀 수출 금지"…국제 곡물값 '출렁'

◆곡물 수급 불안 가중


세계 최대 쌀 공급국인 인도가 수출 물량의 절반에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국제 쌀 가격이 출렁이고 있다. 최근 러시아가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 곡물 선박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하는 흑해곡물협정을 파기한 여파로 국제 밀 가격 역시 치솟는 상황이다. 4년 만의 엘니뇨가 세계 각지에 폭염·가뭄을 일으켜 곡물 생산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주요 곡물 공급국들의 수출길까지 막히면서 지난해 전 세계 식탁을 덮쳤던 ‘애그플레이션’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쌀 수출 1위' 인도, 자국 쌀값 올라
총선 앞둔 모디 수출량 절반 제한
베트남·태국산 쌀 가격 일제 급등




21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비(比)바스마티 백미의 허가 없는 수출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부스러진 쌀알(싸라기·broken rice) 수출을 제한하고 일부 쌀 품종에 대해서는 20% 수출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제한 범위를 넓힌 것이다. 지난해 인도가 수출한 총 2200만 톤의 쌀 가운데 비바스마티 백미와 싸라기는 절반에 달하는 1000만 톤을 차지했다. 현지 매체 이코노믹타임스는 이번 조치가 인도 쌀 수출량의 80%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인도 정부는 자국 내 곡물 시장 물가가 요동치자 수출량을 제한하는 특단의 조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인도는 최근 몬순 우기에 따른 극심한 폭우로 경작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인도 상무부에 따르면 인도 내 쌀 소매 가격은 1개월 전보다 3%, 지난해 대비 11.5% 상승했다. 이코노믹타임스는 앞서 “인도의 주요 쌀 재배 지역 내 고르지 못한 강우량으로 최근 10일 사이 곡물 가격이 최대 20% 뛰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내년 총선을 앞둔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민심 악화를 막고자 물가 안정에 필요한 국내 물량을 시급히 늘리기 위해 해당 조치를 단행했다는 분석이다. 모디 정부는 이미 밀·설탕 등에 대해서도 물량 제한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전 세계 쌀 수출량의 40%를 차지하는 인도가 이 같은 조처를 발표하며 국제 쌀 가격이 향후 큰 폭으로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인도산 쌀을 수입하는 국가는 140여 개국에 이른다. 블룸버그통신은 “해당 조처가 자국 내 곡물 가격을 낮출 수는 있지만 엘니뇨의 복귀가 이미 농작물 피해 우려를 높이는 상황에서 국제 가격은 더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쌀 시장은 이미 공급량 급감 우려를 반영하는 모습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인도 정부가 20일 쌀 수출 제한 조치를 발표하기 직전 베트남산 싸라기 가격은 톤당 515~525달러로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인도산과 태국산 같은 품종 역시 이번 주 들어 각각 5년, 2년 5개월 만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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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V 크리슈나 라오 인도쌀수출협회장은 “인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세계 쌀 시장을 교란할 것”이라며 “다른 국가로부터 물량을 대체할 수 없는 바이어들은 갑작스러운 수출 금지로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쌀 수출 2·3위국인) 태국과 베트남은 부족분을 충당할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아프리카 바이어들이 특히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흑해협정 파기에 밀 가격 14%↑
우크라도 러시아 선박 제재 '맞불'
수출길 막혀 피해 장기화 불가피


가뜩이나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흑해곡물협정이 파기되며 세계 곡물 시장이 받을 충격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17일 전시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 곡물의 해상 수출을 보장하는 흑해곡물협정을 1년 만에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우크라이나 국방부 역시 “러시아 항구로 가는 모든 선박은 우크라이나에 위험으로 간주해 금지한다”고 맞불을 놓았다. 세계 최대 밀 수출국 우크라이나의 해상 수출길이 막힌 데 이어 러시아 선박까지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제 밀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시카고상품거래소(CBT)의 9월 인도분 소맥 선물 가격은 흑해곡물협정이 파기된 17일부터 이날까지 14% 가까이 상승했다.

한편 4년 만에 돌아온 엘니뇨 현상으로 세계 곳곳에서 가뭄·폭염·폭우 등 이상기후가 발생하자 쌀·밀 외 주요 곡물들의 가격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2개월(6월 1일~7월 19일 기준) 11월 인도분 대두 선물 가격은 부셸당 11.69달러에서 14.08달러로 20% 넘게 상승했다. 같은 기간 12월 인도분 옥수수 선물 가격 역시 4% 선으로 뛰었다.

흑해 항로를 통한 곡물 수출이 어려워진 데 이어 인도의 수출 제한령까지 더해지면서 장기적으로 국제 곡물 시장의 취약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브라질·호주 등 다른 주요 곡물 수출국의 수확량이 아직 비교적 견실한 점, 우크라이나가 우회 경로를 활용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곡물 공급의 단기 충격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이상기후 피해가 지속될 시 장기적인 여파는 얼마든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를 위협했던 곡물발(發) 인플레이션이 재연될 경우 빈곤국들이 특히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슈와트 사라프 국제구호위원회(IRC) 동아프리카 비상국장은 “우크라이나 흑해 곡물 수출 중단으로 특히 더 타격을 받는 곳은 이미 기아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나라들”이라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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