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수해재원 충분한데…이재명 "추경, 춤이라도 추겠다"

정부, 가용재원 7.6조 "신속집행"

재난 2.8조 등 예비비만 4.6조

野는 재원 충분한데 추경 압박

총선표심 노린 野 '묻지마 추경'

23일 전북 익산시 망성면 일대의 한 농가에서 수해 복구를 지원하고 있는 장병에게 현지 주민이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전북 지역 향토사단인 육군 제35보병사단은 대규모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익산시 일대에서 수해 복구 작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육군제35사단23일 전북 익산시 망성면 일대의 한 농가에서 수해 복구를 지원하고 있는 장병에게 현지 주민이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전북 지역 향토사단인 육군 제35보병사단은 대규모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익산시 일대에서 수해 복구 작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육군제35사단






정부가 ‘극한 호우’ 피해 대응에 7조 6000억 원가량의 재원을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 재해 규모 등을 고려하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 수해 복구 지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자는 야당의 주장도 정부 여당은 일축하고 있다. 다만 추경 요건에 해당하는 자연재해 발생이 돌발 변수가 될 수 있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추경병(病)’이 또다시 도질 기미여서 바짝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2000억 원), 행정안전부(1200억 원) 등 각 부처에 3790억 원의 재해대책비가 책정돼 있어 즉각 재해 복구에 사용된다. 행안부에는 재난지원금 등의 목적으로 재난대책비가 1500억 원 편성됐다. 1조 원에 달하는 행안부 재난안전특별교부세도 있다. 기재부에 예측할 수 없는 지출에 대응하기 위한 예비비 역시 4조 6000억 원이 있다. 일반예비비가 1조 8000억 원이고 나머지 2조 8000억 원이 재난 대책을 위한 목적예비비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내년도 예산 1조 5000억 원(국고채무부담행위)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들 자원을 모두 끌어모으면 7조 60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피해 규모를 고려하면 충분한 재원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8월 수도권 집중호우로 3155억 원, 9월 태풍 힌남노로 244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역대 재산 피해가 가장 컸던 2002년 태풍 루사의 경우 6조 원이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피해 규모가 가용 재원을 넘어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신속한 집행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충분한 재원을 두고도 야당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추경을 주장하고 있다. 역대급 세수 부족 상황을 틈타 세수 부족 시 추경을 무조건 편성하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까지 추진할 태세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책 수단이 없는 야당으로서는 민생을 챙긴다는 선점 효과를 챙기고 정부 여당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책임한 추경을 반복해 내세우고 있다”며 “하반기에도 경기 침체가 이어질 경우 여당도 손을 놓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극한 호우에 태풍까지 겹쳐 물가가 뛰고 경기가 악화할 경우 선거를 앞둔 여당 역시 추경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연초 난방비 이어 수해까지…'추경 불가론' 흔드는 민주당




정부 여당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수해 추가경정예산안을 일축하는 데는 가용 자원이 넉넉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당장 재난용 목적예비비 2조 8000억 원, 부처별 재해대책비 4000억 원을 포함해 올해 재해예비비로만 총 4조 3000원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국고채무부담행위에서 1조 5000억 원, 일반예비비 1조 8000억 원까지 끌어다 쓸 경우 가용 자원은 총 7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8월 수도권 집중호우 피해가 3000억 원, 같은 해 8월 태풍 힌남노 피해 규모가 2000억 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재원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야당의 추경 주장에 경계의 날을 바짝 세워야 할 만큼 현재 우리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4년 만에 대대적인 세수 결손이 확실시된다. 올 5월 이후 연말까지 지난해와 똑같은 규모의 세금을 걷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올해 세수는 세입 예산(400조 5000억 원) 대비 41조 원이 빌 것으로 점쳐진다.

설상가상 중국 경제 부진 등으로 경기 회복도 지연되고 있다.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을 1.3%로 내려 잡았을 정도다. 가뜩이나 울고 싶은 터에 자연재해에 뺨까지 맞은 형국인 셈이다.

野, 수해피해 집계 전부터 요청
올해만 3차례 30조 추경 주장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부 여당도 아직은 추경 편성에 선을 긋고 있지만 언제 상황이 급변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관료는 “그간 올해 성장률이 1%대만 기록해도 (정부 내에) 추경 편성을 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공감대 같은 게 있었다면 (폭우 피해가 발생한) 지금은 (추경 편성 불가 방침을) 장담하기 어렵다”며 “재해 복구에 가용할 재원이 있다 해도 추경의 강한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경북 안동시 당 사무실에서 최고위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경북 안동시 당 사무실에서 최고위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야당은 수해 추경을 노골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아직 피해 규모조차 정확히 추산되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추경에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연초 30조 원 규모의 난방비 추경을 주장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근에도 ‘35조 원의 민생 추경’을 주장하면서 “국채 발행까지 고려하자. 추경 춤이라도 추겠다”고 나섰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당시 5년간 10번의 추경 편성으로 국가채무가 415조 원이나 늘었다”며 “이게 윤석열 정부의 재정 운용에 부담을 주고 있음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공당으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40조 세수펑크에 총선까지 앞둬
與도 지지율 하락땐 장담 못해
"가용재원 밝혀 논란 돌파" 지적


전문가들은 이번 수해를 빌미로 긴축 기조에 변화가 생길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석열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긴축 선언까지 했다 해도 현금성 복지 지출 구조조정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 이번 수해 피해의 파장이 경기 부진 등과 맞물려 어떻게 튈지 예단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는 “이번이 끝이 아니라 자연재해가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기후 변화에 세수 부족까지 커질 경우 정부 여당도 한정된 재원 속에 백기를 들 수 있다”며 “세수 펑크에 직면해서도 증세가 아니라 경기 활성화에 방점을 찍은 정부로서는 보다 강단 있게 리더십을 발휘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재해 극복을 위한 가용 자원 등을 소상히 밝혀 추경 논란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여당의 지지율이 뒷걸음질 치면 여당 내부에서도 추경에 반대하는 여론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선거 앞에 정부 여당이 건정 재정을 지키려면 이번 수해 대응을 신속하고 민심 동요가 없게 잘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선거철마다 '매표 추경' 변질…메르스·코로나때도 논란 불러


추가경정예산의 역사를 살펴보면 ‘습관성 추경’이 빈말이 아니다. 2000년 이후 추경이 없었던 해는 2007년·2010년·2011년·2012년·2014년 다섯 번뿐이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편성된 추경은 매표성 추경으로 변질되기 일쑤였다.

총선을 9개월 앞두고 편성된 2015년 ‘메르스 추경’이 대표적이다. 당시 편성된 11조 5639억 원 중 재정지출을 확대하기 위해 편성된 액수는 6조 1362억 원이다. 문제는 이 중 20%인 1조 2500억 원이 메르스 대응·피해 업종 지원과 무관한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배정됐다는 점이다. 서해선 복선 전철(200억 원), 전남 보성~임성리 철도(100억 원), 도시 철도 내진 보강(100억 원) 등이 국회 논의를 거쳐 추가됐다.

설상가상 집행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당시 추경 편성에 따라 정부는 총지출 규모를 375조 4000억 원에서 384조 7000억 원으로 늘려 잡았는데 실제 지출된 액수는 372조 원이었다. 본예산 편성 당시 예상한 총지출 규모보다도 적다. 당시 추경을 위해 9조 6000억 원의 국채를 발행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쓰지도 않을 예산을 늘리기 위해 정쟁도 하고 빚까지 졌다는 의미다.

비판도 잇따랐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당시 △대구 사이언스 국가산단 진입 도로 사업(100억 원 추가 편성) △행복도시~공주시 연결 도로 사업(100억 원) △대청 광역상수도 건설 사업(150억 원 추가 편성) 등을 집행 및 성과 부진 사업으로 꼽으며 “추경이 의도한 경기 회복 모멘텀 유지, 민생 안정 등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2020년 2차 추경에 포함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사업도 비슷하다. 정부는 당시 지원 대상을 소득 하위 70%로 한정해 사업 규모를 7조 6000억 원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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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총선을 코앞에 두고 여야는 지원 대상을 전 국민으로 늘렸고 규모는 14조 3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박명호 홍익대 교수는 “당시 현금 지원은 일정 부분 소득분배를 개선했지만 투입된 재정 규모에 비해 개선 정도가 충분했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송종호 기자·세종=우영탁 기자·세종=곽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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