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1번째 개발 신약 ‘렉라자’의 무상 공급이 시작됐다. 1년 약값이 7000만 원에 달해 비용 부담이 컸던 3세대 표적항암제를 무료로 처방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폐암 환자들의 갈증이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24일 고신대복음병원에 따르면 최근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돌연변이를 동반한 비소세포폐암 4a기로 진단된 60대 남성과 1년 전 폐선암 1기로 진단돼 수술을 받은 후 재발한 50대 여성이 동정적 사용프로그램(EAP) 1·2호 환자로 등록되어 ‘렉라자’를 무료로 처방 받았다.
유한양행(000100)이 ‘렉라자’가 1차 치료제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될 때까지 무상 공급하겠다고 약속한 지 약 2주 만에 첫 적용 사례가 나왔다. 국내외 기업을 통틀어 자체 개발 신약을 건보 적용 전까지 무제한으로 무상 지원하는 사례는 전무했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이달 초 기자간담회에서 “렉라자의 급여 처방이 가능한 시점까지 지원 규모에 제한을 두지 않고 무상으로 약제를 제공하는 동정적사용프로그램(EAP)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고(故) 유일한 박사의 창업 정신을 기려 수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취지다.
렉라자는 폐암 세포의 성장에 관여하는 EGFR 수용체의 신호전달을 방해해 폐암 세포의 증식과 성장을 억제하는 3세대 표적항암제다. ‘이레사’, ‘타쎄바’ 등 1·2세대 약물을 복용하다 T790M 내성이 생긴 폐암 환자에게 2번째 옵션으로 투여되어 왔는데 지난달 말 EGFR 엑손 19 결손 또는 엑손 21(L858R) 치환 변이가 확인된 국소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확대 허가를 받았다.
렉라자와 동일한 기전으로 작용하는 ‘타그리소’는 2018년 1차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지만 5년 가까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비급여로 타그리소를 처방받을 경우 한달치 약값만 600만 원 수준이다. 1년으로 환산하면 7000만 원에 달한다. 현재 1차 치료제로 건보 적용을 받는 1·2세대 약물의 경우 T790M이라는 내성 유전자에 효과가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렉라자와 같은 3세대 약물은 1·2세대 약물보다 무진행생존기간(종양 크기가 더 나빠지지 않은 상태로 생존한 기간)이 약 2배 길고 뇌혈관장벽(BBB) 투과력이 높아 뇌전이의 치료나 예방에 효과적이다.
EGFR 돌연변이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에서 발생률이 높다. 렉라자와 같이 3세대 약물을 1차 치료제로 처방받아야 하는 4기 폐암 환자는 어림잡아도 3000명 가량 된다.
장태원 대한폐암학회 회장(고신대복음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비급여로 타그리소를 복용하며 효과가 있는 데도 비용 문제로 4개월 남짓 버티다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이 많았다”며 “일선에서 폐암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 의사로서 민간 기업이 수익성을 포기한 채 전폭적인 지원에 나선 데 대해 감동했다. 폐암 치료제 처방 판도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EAP는 EGFR 엑손19 결손 또는 엑손21 치환 변이된 국소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으로 진단된 환자 중 치료 이력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주치의의 엄밀한 평가를 거쳐 운영된다.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진료하는 전국 2·3차 의료기관이 참여할 수 있다. 현재 고신대복음병원 외에도 전국 주요 병원들이 EAP 진행을 위한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승인 절차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