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캐피털(VC)들이 하반기 들어 대형 벤처 펀드를 연이어 결성해 고금리로 지난해부터 지속된 벤처 업계의 투자 혹한기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도 유동성 고갈 속에 하향 안정화해 VC들이 공격적 투자를 단행할 환경도 조성되고 있다.
2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VC들이 경쟁적으로 수천억 원 규모의 대형 벤처 펀드를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 결성될 신규 펀드를 포함하면 전체 조성액은 연내 2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됐다.
SV인베스트먼트와 컴퍼니케이파트너스 등 중견 VC들이 약정액 1000억 원 이상의 대형 벤처 펀드 결성을 완료한 것이 대표적이다. SV인베스트먼트는 1752억 원 규모의 ‘에스브이 Gap-Coverage펀드 4호’를 결성하고 투자처 발굴에 착수했다. 류지화 부사장이 대표 펀드매니저를 맡아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컴퍼니케이파트너스도 최근 1320억 원 규모의 ‘IBK-컴퍼니케이 혁신성장펀드’를 조성했다. 변준영 부사장이 대표 펀드매니저로 펀드 운용을 총괄한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은 “스케일업을 앞둔 스타트업들이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대형 벤처 펀드를 운용하는 VC들의 경쟁력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신규 벤처 펀드는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의 ‘에이티넘 성장투자조합 2023(가칭)’이다. 에이티넘은 9월 초를 목표로 약정액 8000억 원대 규모로 펀드 결성을 완료할 방침인데 역대 벤처 펀드 중 가장 큰 규모다. VC업계 ‘연봉 킹’으로 유명한 김제욱 부사장이 첫 대표 펀드매니저로 나서는 펀드여서 특히 기대를 모으고 있다.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와 스톤브릿지벤처스·한국투자파트너스·K2인베스트먼트 등도 약정액 1000억~2000억 원 규모 펀드 결성을 앞두고 있다.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는 회사 설립 이후 최대 규모인 2200억 원 이상 규모의 펀드를 목표로 세웠다. 백인수 상무가 대표 펀드매니저를 맡을 예정이다.
스톤브릿지벤처스는 최동열 파트너가 지휘봉을 잡고 최소 1200억 원 규모의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IBK캐피탈과 함께 연내 결성을 목표로 1500억 원 규모 펀드 자금 확보에 착수했다. K2인베스트먼트도 1200억~1500억 원 규모로 복수의 펀드 결성을 계획하고 있다.
VC들의 신규 펀드 결성이 속속 구체화하는 것은 금융회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그간 막아놓았던 곳간 문을 다시 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지주 계열사의 펀드 출자 담당자는 “지금 같은 시기는 긴 호흡으로 투자하는 벤처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자금줄이 말랐던 스타트업들의 기대감은 커지게 됐다. 2020년부터 2021년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수천억 원대 기업가치를 달성한 스타트업들도 후속 투자 유치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는 모습이 실제 포착되고 있다. 벤처투자 업계에서는 직방과 당근마켓·리디·버킷플레이스(오늘의집) 등의 유니콘 기업들이 연말 혹은 내년 초 신규 투자 유치에 나설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VC들은 신규 펀드 결성 초반에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형 벤처 펀드를 결성한 VC들을 상대로 자금 조달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