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북한이 주장하는 이른바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 행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등을 내세운 북한의 열병식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중국·러시아 대표가 함께 지켜봤다. 중러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용인해준 셈이다. 안호영 전 주미대사는 31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최근 북한의 도발은 한국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면서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정상회의에서 확장 억제력 강화를 더 구체화하고 가속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을 지낸 안 전 대사는 “김정은 정권이 영원히 인민을 속일 수는 없다”면서 “북한에 틀림없이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궁극적으로는 외교를 통해 해결해야 하지만 지금은 억제력 강화에 집중해야 할 때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정면 대결 원칙을 내세우고 해마다 수십여 발의 미사일을 쏘고 있다. 특히 변칙적으로 움직이는 이스칸데르 등 단거리 미사일 발사 도발은 남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봐야 한다. 핵 사용에 대한 법률도 선제공격이 가능하도록 바꾸고 전략핵 부대와 전술핵 부대를 만들어 실제 연습을 반복하고 있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다. 한미 워싱턴 선언에 명시된 확장 억제력 강화를 한층 구체화하고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도발을 언제까지 지켜봐야만 하나.
△그렇게 절망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최근 중국 해관총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북한이 중국에 수출한 1위 품목은 가발과 눈썹이었는데 이 같은 품목이 전체 수출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북한의 대중국 수출 총액이 1억 5000만 달러로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시작되기 전인 2016년의 북중 교역이 30억 달러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위축됐다. 김정은 정권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면 북한이 경제적으로 떵떵거리면서 강성대국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인민들을 기만했으나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언젠가는 북한에 틀림없이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그때까지 대북 제재를 계속 강화해야 한다.
-한미일 정상이 8월 18일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의미는.
△미국 대통령들이 자기가 초대한 손님에 대한 친밀감을 표시하는 장소로 활용하는 곳이 캠프데이비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외교를 굉장히 중시하면서 경험도 많은 ‘외교 대통령’인데 그동안 한 번도 외국 손님을 캠프데이드에 초청하지 않았다.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한미일 3국 협력과 한미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 바이든 대통령이 몸소 보여주는 상징적인 외교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성과를 얻어야 할까.
△우선 올 4월 미국 국빈 방문 당시 도출한 워싱턴 선언의 이행을 가속화하기 위한 협의를 가져야 할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외 경제정책이 자국 중심의 산업 정책에 기울어져 있어 동맹국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편향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이 한미 동맹 발전에 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바로잡을 수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 과학기술에서의 한미 협력은 중대한 미래 과제다. 반도체와 배터리를 넘어 미국이 절대적 우위를 갖춘 항공우주·바이오 분야에서도 실질적 협력을 진전시켜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역사적인 큰 전환에 대해 흔히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말하는데 한일 관계는 이미 1965년에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생각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할 경우 얼마나 큰 역풍을 맞게 될지 몰랐겠는가. 자신이 어떤 수모를 겪어야 할지 뻔히 알면서도 일본과 안보 및 경제협력을 위해 한일 국교 정상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해 고뇌 끝에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안보·경제 이익을 가장 가까이에서 공유하는 나라다. 최근 몇 년간 최악의 상황에 처한 한일 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한 윤 대통령의 노력도 그런 맥락에서 평가해야 한다.
-방사능 오염수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나.
△그간 한일 관계 개선의 난점은 주로 역사 문제에 기인했는데 오염수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에 맞게 국제 정세를 직시하며 풀어가야 한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덕분에 산업화에 성공했고 민주화를 이뤘고 국제화를 달성한 나라며 경제·군사력·문화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세계 10위 이내에 드는 강국이다. 게다가 신냉전 또는 역사의 변곡점이라고 지칭되는 지금의 국제 정세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질서가 전례 없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지 않은가.
-한국의 위상이나 국제 정세가 오염수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국제사회에서 발전한 나라들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고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선진국들은 방사능 오염수 방류 같은 문제가 생기면 대중의 감정이나 정치적 선동에 따라 처리하지 않고 과학에 근거해 해결한다.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려면 국민의 감정에 호소하고 선동에 나설 게 아니라 어떤 문제가 있는지 과학적으로 증명하면 된다. 핵 안전 문제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태평양 연안 국가들을 참여시켜 과학적 검증을 통해 만든 보고서를 부정하고 보고서 내용 설명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에게 수모를 준 것은 부끄러운 태도다.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나.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보나 지경학적으로 보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다. 다만 중국에 대만 문제처럼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양보가 불가능한 선이 있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인권과 법치주의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미국·일본·영국·프랑스·호주 등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법치주의 원칙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서로 지켜야 할 가치를 존중하면서 관계를 발전시켜가야 한다.
-한중 관계가 안정되지 못하고 급변동을 반복하는 이유는 뭔가.
△한국이 미국·일본·영국 등에 비해 대외 정책 원칙에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탓이 크다.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지난 정부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법치주의에 일관된 입장을 견지했다면 중국도 한국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나라인지 명확히 인식하고 대응했을 것이다. 정권에 따라 원칙이 흔들리다 보니 중국이 서운함을 갖게 되고 ‘사드 보복’처럼 다른 나라들은 당하지 않고 당할 이유도 없는 황당한 횡포까지 겪게 된다고 생각한다.
-대(對)중국 무역적자 심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데.
△우리 기업들의 중국 사업 퇴조는 중국의 산업 정책 변화에 기인한 것이므로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중국이 내수를 키우는 정책으로 선회해 중국 기업들의 성장을 총력적으로 지원하면서 한국 자동차·휴대폰 등의 중국 시장점유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제 반도체를 제외하면 중국에서 살아남은 비즈니스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중국과의 교역을 다시 흑자로 돌려놓으려면 반도체처럼 우리가 확실하게 기술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초격차 기술과 ‘킬러 제품’을 많이 확보해야 한중 경제 관계에서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7월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나.
△지금 우리는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 심각한 시기에 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계속 지켜나갈 것인지 그냥 눈앞의 이익만 추구할 것인지 분명하게 방향을 정해야 한다. 러시아가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아무 이유 없이 침공했다. 우리도 한국전쟁에서 미국 등 자유민주주의 우방국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경험이 있지 않나. 우크라이나가 지금 당하는 것을 우리가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경제 측면에서도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 사업에 우리도 참여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우리도 같이 좀 하자고 나설 수는 없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에는 윤 대통령의 방문 전에 이미 45개국 정상들이 다녀갔다. 세계 10위 이내 국가 위상을 지닌 한국의 정상이 46번째로 우크라이나를 찾은 것은 외려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행을 거칠게 비판했다.
△국내 정치는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는 말이 있다. 국제 문제는 가능한 한 가장 기본적인 국가 이익에 비춰 판단해야지 당리당략에 근거해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보면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한 사례들이 너무 많다. 외교 문제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대국적 견지에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정부에 비판적인 야당이라고 해도 국가적 과제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면서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He is…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외무고시 11회에 합격해 외교부에 들어가 통상교섭조정관, 주요 20개국(G20) 대사, 주유럽연합(EU) 대사 등을 거쳐 외교통상부 제1차관과 주미 대사를 지냈다. 외교관 은퇴 후에는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과 아산정책연구원 이사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경남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국회의장 직속 경제외교자문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