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최근 ‘노인 비하’ 발언 논란을 일으킨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 문제를 놓고 수습에 나섰지만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의원들의 도덕성 문제로 촉발된 당의 위기를 진화할 소방수 역할로 혁신위를 출범시켰지만 이후 40여 일이 지나도록 혁신위는 성과보다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오히려 혁신위의 실수를 당 지도부가 수습하는 모습이 연출되면서 내년 총선 전까지 국민 지지도를 회복할 돌파구가 사실상 사라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2일 오전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 모든 구성원은 세대 갈등을 조장하거나 특정 세대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삼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노인 폄하 파문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자 지도부가 직접 진화에 나선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특히 선거 때마다 민감하게 작용했던 세대 갈등의 뇌관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기초연금 도입 및 확대, 노인 일자리 확충, 경로당 냉난방비 예산 확충 등 민주당이 추진해왔던 각종 노인 복지 정책을 강조하기도 했다.
당 안팎에서는 민주당 혁신위가 통합과 쇄신이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논란과 분열을 반복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초선 의원들이 학력 저하가 심각한 코로나 세대 학생들처럼 소통이 안 되는 느낌”이라고 밝혀 당내 초선 의원들의 항의를 받는가 하면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해 “자기 계파를 살리려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발언으로 친낙(친이낙연)계의 반발을 샀다. 여기에 노인 비하 논란이 불거진 지 하루 만인 이달 1일 ‘인천 시민과의 대화’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가리켜 ‘대통령’ 직함을 뺀 채 “윤석열 밑에서 통치받는 게 창피했다”고 말해 여당의 반발이 뒤따랐다.
당 내부에서도 계파를 가리지 않고 김 위원장에 대한 쓴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날 친명계로 분류되는 정성호 의원은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어르신들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보지만 자녀의 말을 인용함에 있어서 분명히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청년 정책을 총괄하는 랩2030 단장인 홍정민 의원은 “연령에 따라 투표권에 차별을 둬야 한다는 것은 합리적이 아닌 비합리적 주장”이라며 김 위원장의 말을 직격했다.
혁신위가 이 대표에게 우호적인 인물들로 구성돼 ‘친명 혁신위’라는 오명을 쓴 상황에서 이번 논란을 계기로 혁신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혁신위는 불체포특권 포기를 골자로 한 1호 혁신안을 내놓았지만 이후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이후 민주당은 가까스로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한 조건을 붙여 불체포특권 포기를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혁신위의 첫 제안 후 4주가 지난 만큼 ‘반쪽짜리 쇄신’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마저도 김 위원장이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의 기명투표 적용’을 공론화하면서 불체포특권 포기 당론 채택의 의미를 희석시켰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치권에서는 혁신위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좌초될 위기를 겪자 결국 당 지도부에 책임이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기대하며 적극적 혁신을 내세우고 혁신위를 출범했는데 애초에 혁신위원 중 지도부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았냐”며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혁신위가 존립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 역풍은 이 대표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혁신위는 전국을 돌며 각 지역별 시민과의 대화를 예정대로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순회 간담회를 통해 민심을 직접 듣고 혁신안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