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선조들은 17세기 대항해 시대에 발맞추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지요. 지금 21세기 디지털 대항해 시대에는 앞서 가야 한다는 마음에서 책을 냈습니다.”
신간 ‘크립토 사피엔스와 변화하는 세상의 질서(세종서적)’ 저자인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3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크립토(crypto)’란 블록체인 중심의 디지털 기술인 ‘암호화’를 뜻한다. 즉 ‘크립토 사피엔스’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경제·사회 활동을 주도하는 신인류를 뜻하는 조어다. 법대 출신인 변호사가 블록체인 관련 저서를 낸 데 대해 “제도화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자신이 블록체인 전문가가 되는 과정에 2개 사건의 변곡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오픈소스 관련 자문을 엉겁결에 맡았죠.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라고 생각했든 데 오픈소스가 가리키는 ‘공유와 개방의 철학’에 충격을 받았어요.” 다시 10년 뒤에는 비트코인의 등장에 세상의 격변을 감지했다. 그 비트코인의 기반 로직이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에서 시작해 증권형토큰(STO) 등 금융을 거쳐 프로토콜 기반의 탈중앙화자율조직(DAO) 같은 사회조직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사회·경제 시스템이 기존 중앙화에서 탈중앙화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블록체인을 비트코인 투기로만 이해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블록체인이 바꿔놓을 세상을 17세기 주식회사가 변화시킨 세상과 비교했다. “17세기 유럽은 ‘관념적 자산’인 주식을 창조해 경제체제와 사회조직을 바꾸었어요. 네덜란드·영국 동인도회사 출범이 대표적 사례로, 이는 대항해 시대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주식과 주식회사가 이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는 당시에는 누구도 생각 못했겠죠”라며 “특히 한국의 적응이 늦으면서 근대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아쉬워했다.
앞으로는 블록체인이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개인의 자유가 늘어나고 경제활동도 좁은 지역과 국가를 넘어 전세계로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탈중앙화 기술이 필요해졌고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여전히 국내의 법과 제도는 기존 중앙화 시스템에 고착돼 있고 변화에 느리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람들의 인식, 법, 제도가 서로 충돌하거나 기존의 법제도가 규율하지 못하는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자산의 가치가 불투명한데 누가 생산이나 거래를 하겠나”며 “자본주의의 발전은 곧 시스템화인데 이는 블록체인 시대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인공지능(AI) 보다 블록체인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AI는 사실 인간 노동의 보조적인 역할이 큰 반면, 블록체인은 제도의 근간을 흔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