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이 새로운 전기차 격전지로 부상한 인도를 방문해 현대차·기아(000270)의 중장기 전략을 점검했다. 현지 맞춤형 전기차를 생산하고 산업 생태계까지 구축해 세계 3대 자동차 시장에 등극한 인도에서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그룹의 계획에 힘을 싣기 위한 차원이다.
9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 회장은 7일부터 이틀간 현대차·기아 인도기술연구소와 현대차 인도공장을 둘러봤다. 2019년 회장에 취임한 후 인도 사업장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회장은 인도기술연구소에서 현지 연구개발(R&D) 전략을 점검하고 전기차 시장 동향을 파악했다. 인도기술연구소는 한국에 있는 남양연구소와 협업해 현지에 적합한 차량을 개발하는 등 인도 시장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정 회장은 인도 전기차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의 입지를 빠르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상품성을 갖춘 제품을 적기에 공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인도기술연구소가 현지에서 현대차그룹 성장을 견인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튿날에는 첸나이에 위치한 현대차 인도공장에서 생산과 판매 분야의 중장기 발전 방안을 논의하고 글로벌 자동차 밸류체인(가치사슬) 재편 동향을 확인했다.
정 회장이 인도 사업장을 직접 챙긴 것은 현지 자동차 시장이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인도는 지난해 신차 판매량이 476만 대에 달하며 중국·미국에 이어 세계 3대 자동차 시장에 올랐다. 이 가운데 승용차 시장은 380만 대 규모로 2030년에는 5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전기차 중심으로 성장세를 거듭할 예정이다. 2030년 전체 산업 수요 500만 대 가운데 SUV가 48%를 차지하고 전기차는 1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발맞춰 현대차는 지난달 출시한 경형 SUV 엑스터를 비롯해 현지에 특화한 SUV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다. 2032년까지 5개의 전기차 모델을 투입하고 현대차 판매 네트워크 거점을 활용해 2027년에는 전기차 충전소도 439개까지 확대한다.
기아도 셀토스·쏘넷 등 SUV 인기에 기반한 프리미엄 이미지를 바탕으로 현지 전기차 시장을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2025년부터 현지에 최적화된 소형 전기차를 생산하고 목적기반차량(PBV) 등 다양한 전기차 모델을 공급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인도 자동차 시장 2위 제조사로 탄탄한 사업 기반을 갖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80만 7067대를 판매한 데 이어 올해 7월까지 전년 대비 8.8% 증가한 50만 2821대를 팔았다. 올해 판매 목표는 지난해보다 8.2% 높은 87만 8000대다.
현대차그룹은 특히 인도에 전기차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작업에도 집중하고 있다. 2030년까지 전기차 비율을 30%로 높이겠다는 인도 정부의 ‘전동화 드라이브’ 정책에 호응하기 위해서다. 앞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메이드 인 인디아’라는 캠페인을 내세우며 전기차 보급을 넘어 자체적인 산업을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이를 위해 자동차 수입 관세를 60%에서 70%로 인상하는 등 자국 산업 보호 정책도 수립했다.
현대차는 10년간 인도에 2000억 루피(약 3조 2400억 원)를 투자해 전기차 등 미래차 생산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기존의 내연기관차 생산 라인을 전기차 라인으로 바꾸고 매년 전기차 배터리팩 17만 8000개를 조립할 수 있는 생산 설비를 새로 설립한다.
예정된 투자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정 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첸나이 공장이 위치한 타밀나두주 정부 인사와도 만났다. 정 회장은 M K 스탈린 타밀나두주 수상에게 현대차 첸나이 공장에 대한 주정부의 지원에 감사를 표하고 전동화를 비롯한 현대차의 중장기 사업 계획을 설명했다. 양측은 성공적인 전기차 생태계 구축을 위해 기업과 주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