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이 이달 들어서도 1조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침체된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주담대 대출 규제를 완화한 결과로 풀이된다. 한국 경제의 잠재적 위험 요소로 꼽히는 가계 부채가 다시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대출 규제 완화를 추진했던 정부도 다시 가계대출의 고삐를 죌 전망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일 기준 679조 8893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679조 2208억 원)보다 6685억 원 늘어난 규모다.
특히 주담대 증가세가 거세다. 주담대 잔액은 같은 기간 512조 8875억 원에서 514조 1174억원으로 1조 2299억 원이나 늘었다. 이에 따라 이달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도 지난 4월 이후 5개월 연속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우회 수단으로 등장했던 50년 만기 주담대의 증가 속도가 만만치 않다.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 등 4개 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 취급액은 1조 2379억 원으로 상품 출시 이후 한 달여 만에 1조원을 넘어섰다. 대개 대출은 만기가 길어질수록 갚아야 할 전체 원리금은 늘어나지만, DSR이 1년 단위로 소득 대비 원리금 감당 능력을 보기 때문에 당장 현재 대출자 입장에서는 전체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예컨대 비규제지역 7억원짜리 집을 사려는 연소득 6000만 원인 직장인이 연 5% 금리로 40년 만기 대출을 받을 경우 4억 1500만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50년 만기 대출을 받으면 4억 4500만 원까지 가능해 총 대출액이 3000만 원 늘어난다. 하지만 전체 대출 기간 원리금 상환액은 40년 만기의 경우 9억 6000만 원, 50년 만기 대출은 12억 1200만 원으로 2억 5200만 원이나 늘어난다. 원리금 부담은 커지지만 당장 집 사는데 돈이 부족한 차주 입장에서는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어 50년 만기 상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지난 10일 정부와 금융권이 참석해 개최한 '가계부채현황 점검회의'에서도 50년 만기 주담대가 가계대출 증가의 한 요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최근 은행연합회가 50년 만기 주담대 실적과 조건 등을 회신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금융당국 역시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한 규제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당국은 50년 만기 상품에 나이 제한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만 34세 이하 차주만 50년 만기 주담대를 받을 수 있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인터넷전문은행의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주담대를 취급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로 두 은행의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주담대 잔액은 21조원 정도로 1분기 말(16조 6990억 원)보다 4조원 이상 증가했다. 금융당국에서는 중저신용자 대출에 힘써야 할 인뱅들이 주담대에 집중하는 것은 인뱅 인가 취지에도 맞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정부가 부동산 시장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대출 규제 완화를 시행할 때부터 가계 대출 증가는 예견된 일이었는데 이를 은행 탓으로 돌리지는 않을 지 우려하는 모습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은행들의 영업행태가 ‘이자 장사’로 지적받은 후 은행들이 ‘공공의 적’이 됐다”며 “가계 대출 증가도 은행들이 이익을 늘리기 위해 대출 영업을 확대한 탓으로 돌리지 않을 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50년 만기 주담대 출시도 알고보면 금리인상기 대출자의 원리금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반영된 것"이라며 “새로운 규제를 적용하면 은행들은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