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손충당금 산정 방식을 개편하고 있는 당국과 시중은행이 부동산 자산 손실률을 보다 높여 잡기로 했다. 2019~2021년 이례적인 시장 호황에 가려졌던 부동산 대출 부실이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금융 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금융권 민관 충당금 태스크포스(TF)’는 최근 충당금 산식 개편을 위한 추가 논의에 착수했다. TF는 충당금 적립 규모를 더 늘리기 위해 올해 초 금융감독원 주도로 출범했으며 은행연합회와 주요 시중은행 실무진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TF가 새로 마련한 산식은 지침 형태로 각 은행에 전달될 예정이다.
TF는 충당금 산정 시 고려하는 핵심 변수인 ‘부도 시 손실률(Loss Given Default·LGD)’을 하반기 내 한층 보수적으로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LGD는 대출채권이 부도 처리됐을 때 전체 여신 중 은행이 회수하지 못해 손실 처리될 금액을 나타낸다. LGD는 부동산 담보대출의 경우 ‘담보 LGD’, 신용 대출은 ‘신용 LGD’로 구분되는데 TF는 두 변수의 산출 방식을 모두 바꾸기로 했다.
금융권은 특히 TF가 담보 LGD를 개편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담보 LGD를 보수적으로 책정한다는 것은 담보로 잡아 둔 부동산을 팔아도 이전만큼 회수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과열됐던 부동산 경기가 올 들어 하락 안정세에 접어든 만큼 예상 회수액도 낮춰야 한다는 게 TF의 판단이다. TF 논의에 관여한 인사는 “은행들은 LGD를 산정할 때 과거 실적에 따라 값을 산출했다”면서 “최근 3년여간 과열됐던 부동산 시장이 올 들어 조정 국면에 들어선 만큼 과거 데이터를 활용하면 손실 규모를 낙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예상 회수액을 가늠할 수 있는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추이를 보면 올 들어 뚜렷한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경매정보 업체 지지옥션이 발간한 ‘경매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 경기가 정점에 달하던 2021년 7월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은 101.0%에 달했다. 하지만 낙찰가율은 이듬해 말부터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올 4월에는 75%까지 내려앉았으며 이후에도 70~80%대 선에서 횡보하고 있다. 은행이 담보로 잡은 집을 경매에 내놓아도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TF가 계획대로 하반기 내 LGD 개편 작업을 마치면 은행권이 쌓는 충당금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사가 상반기에 쌓은 충당금만 4조 원가량으로 전년보다 갑절 늘었는데 하반기에는 이보다 더 많은 돈을 쌓아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담보 LGD를 개편하려면 집값 향방을 예측할 객관적인 지표를 찾아야 하는 만큼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이라면서 “은행들이 당장 3분기 실적에 새 산식을 적용할 수 있도록 TF가 개정 작업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권 일각에서는 위험 수준에 비해 충당금 적립액이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올해 적립한 충당금이 일종의 기준점이 돼 갈수록 충당금 적립 압박이 거세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은행권의 한 인사는 “당국이나 은행 모두 위기에 대비해 충당금을 더 비축해야 한다는 점은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산식 자체를 보수적으로 바꿔 두면 향후 경기가 반등하는 시점에 필요 이상으로 충당금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