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과 검찰이 ‘라임 사태’를 다시 들여다보기로 한 시점에서 과거 라임펀드를 판매한 신한투자증권이 피해자들에 대한 자발적 배상 결정을 내렸다. 여의도 증권가는 금융감독원이 ‘특혜성 환매’ 의혹으로 미래에셋증권 검사에 이미 돌입한 데다 다른 펀드 판매사에도 추가 조사를 예고한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잔뜩 긴장한 분위기다.
30일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29일 이사회를 열고 환매를 중단한 라임펀드와 젠투(Gen2)신탁의 사적화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적화해는 계약 당사자끼리 자율적으로 분쟁 조정을 했다는 의미다. 신한투자증권은 또 다른 환매중단 펀드인 헤리티지펀드(판매액 3907억 원)에 대해서도 지난해 12월 사적화해를 결정해 가입자들에게 원금을 100% 돌려줬다.
라임 펀드 등에 관한 이번 사적화해 절차는 다음 달부터 시작한다. 배상 비율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배상비율 산정 기준을 준용할 방침이다. 사적화해 대상 금액은 젠투신탁이 4180억 원, 라임 국내·무역개방형 펀드가 총 1440억 원이다. 업계에서는 동일하게 라임펀드를 판매했던 대신증권(1076억 원)이 금감원 분조위 결정을 따라 투자금의 80%를 돌려준 점을 고려할 때 신한투자증권도 이 수준으로 배상하지 않겠느냐고 추정했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구체적인 배상 비율은 개별 고객 계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신한투자증권의 사적화해 결정이 금감원의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펀드 추가 조사 결과 발표 시점과 맞물린 점에 주목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24일 라임운용이 대규모 환매 중단 직전인 2019년 8~9월 다선 국회의원에게 2억 원을 미리 환매해준 사실을 추가 검사 결과 확인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라임운용은 환매 자금이 부족하자 다른 펀드 자금 125억 원과 운용사 고유 자금 4억 5000만 원까지 끌어 쓰며 해당 의원 등에게 특혜를 줬다. 그 과정에서 업계와 정계에서는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름이 거론됐고 김 의원은 특혜성 환매 의혹에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은 같은 날 압수수색 형식으로 라임 펀드 환매와 관련한 당국의 검사 기록 등을 확보했다.
금감원은 나아가 김 의원에 라임펀드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진 미래에셋증권 검사에도 최근 착수했다. 금감원은 라임펀드의 환매 중단을 한 달가량 앞두고 미래에셋증권이 김 의원이 가입한 라임마티니 4호 펀드 가입자 16명에게 환매를 권유한 이유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상당수 라임 펀드 사태 피해자들이 원금을 모두 잃은 가운데 김 의원은 18%의 손실만 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기업은행 등 관련 펀드 판매사들에 대한 전면 검사도 예고했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이번 사적화해 결정은 금융 당국 움직임과는 완전히 관련이 없다”며 “라임펀드와 젠투신탁의 환매를 위한 논의는 이전부터 지속했고 고객 피해 만회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라고 선을 그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김 의원이 가입한 펀드는 유동 자산 비중이 높았기에 환매를 권유한 것”이라며 “다른 라임 펀드는 유동 자산 비중이 적어 곧바로 환매할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업계는 이르면 다음달로 예상되는 박정림 KB증권 사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징계 결정 수위에 관해서도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는 대법원의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무죄 확정 판결 이후 중단했던 이들에 대한 제재 논의를 최근 재개했다. 앞서 금감원은 2020년 11월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라임펀드 사태 관련해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박 대표와 양 부회장에게 ‘문책 경고’의 중징계를 결정한 바 있다. 2021년 3월에는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게도 옵티머스펀드 판매와 관련해 같은 수준의 징계를 의결했다.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으면 이후 3∼5년 동안은 금융사에 재취업할 수 없다.
당국이 한 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문제를 다시 꺼내들자 금융투자 회사 대다수는 적잖게 불편해 하는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업계 인사 상당수는 금감원과 검찰의 이번 재조사가 정치적 색채를 띤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2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증권사는 판매한 상품의 숨은 리스크가 무엇인지 항상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감지가 됐다면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로서 환매하라고 하는 것이 맞다”며 우회적으로 업계 입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