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자국민 실직자 만드는 무역장벽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보호무역에 자재·제품값 올라

고용 줄고 기업·소비자에 불똥

'자립경제' 외칠수록 일자리 위협

정치권 '무역억제' 유혹 벗어나야





공화당과 민주당은 물론 공산주의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까지 공동의 적을 발견했다. 바로 자유무역이다. 공화당은 무역 자유화라는 당의 오랜 정책 기조에 등을 돌린 듯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수천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했다. 그는 마치 샌드백을 치듯 툭 하면 중국을 두드렸고 유럽연합(EU)·영국·캐나다 등 우방국과도 무역 전쟁을 벌였다. 단지 힘을 과시하기 위한 허접하고 쓸모없는 그의 시도는 역작용을 불러왔다. 그가 벌인 온갖 무역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미국의 소비자와 기업이었고 그가 부과한 관세는 국내 고용 감소로 이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줄을 이었다.



그런데도 대선 재도전에 나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최근 “재선에 성공하면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도 세금이다. 그리고 이 같은 세금은 미국인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상품 가격의 추가 인상을 불러온다. 게다가 그의 보편 관세 발언은 물가고를 이유로 공화당이 민주당을 끈질기게 몰아붙이는 시점에서 나왔다. 보편 관세에 격앙된 우방국들과 주요 교역 상대국들은 지난번에 그랬듯 또다시 보복 관세로 맞불을 놓을 것이다. 또 이들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걸린 다른 주요 사안들에 대해서도 협조를 꺼릴 것이다.

이런 우매함은 단지 트럼프 전 대통령에 국한된 문제이니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 쉽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공화당 대선 후보 1차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중국 때리기에 열을 올렸다. 미국이 추구해야 할 경제적·지정학적 전략을 묻는 질문에 우방국 혹은 교역 파트너와의 관계를 심화하는 방법을 거론한 후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신 미국의 경제력을 이용해 우호적 관계와 경제적 유대를 지닌 국가들까지 처벌하는 창조적인 방법을 줄줄이 제시했다.



민주당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사실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공화당과 거의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자멸적이고 근시안적이며 일자리를 없앤다고 비난했던 조 바이든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트럼프 관세의 거의 전부를 그대로 유지했고 남은 일부도 다른 무역 제한 조치로 대체했다.

관련기사



바이든 대통령은 그의 무역 접근법이 미국인 근로자들을 돕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이 정책은 정반대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자체 상품 생산을 위해 미국 기업들이 구입해야 할 자재에 관세가 부과될 때는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나 가전제품 제조 업체처럼 철강을 원자재로 사용하는 기업에 근무하는 미국인들의 숫자는 철강 생산 업체 노동자들의 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럼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세를 부과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거의 온전히 이를 유지했으며 이로 말미암아 후방 산업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

미국 태양광 산업의 내부 사정도 이와 유사하다. 태양광발전 기구 제조 업체 근로자는 태양광 관련 산업 전체 노동자 8명당 1명에 불과하다. 미국 태양광 관련 일자리의 대다수는 태양광 전지판의 설치·배포·개발·관리 등에 몰려 있다. 탄소 배출량 감소와 일자리 성장 극대화 중 어느 쪽이 목표이건 간에 미국 정부는 태양광발전 부품의 경비를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오히려 이들의 가격을 대폭 인상하는 데 기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태양광 수입 제품에 관세를 물렸고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연장했다.

미국 정치인들은 좀처럼 의견 일치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 문호를 가능한 한 최대로 닫아버리는 자급자족 경제의 위험한 매력 앞에서는 결과에 상관없이 한마음이 된다. 타국의 민족주의자와 포퓰리스트 역시 무역 장벽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다른 국가들과의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중국조차 서구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독립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자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음에도 무역 억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립은 대단히 유혹적이다. 그러나 이웃을 거지로 만드는 보호주의의 장기적인 폐해를 따져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자국민을 실직자로 만드는 자립 경제의 단기적 후유증 역시 심각히 살펴봐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