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완성차 업계가 전기차 충전기 '전수조사' 나선 사연 [biz-플러스]

■완성차, 충전기 실태조사 착수

전국단위 첫 전수조사

설치 보조금만 노린 중소사 몰려

3년새 충전기 보급 4배 늘었지만

유지보수·결제방식 등 불편 여전

통합 관리시스템 구축 건의 나설듯

서울 종로구의 한 전기차 충전기. 오승현 기자서울 종로구의 한 전기차 충전기. 오승현 기자




완성차 업계가 전국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의 운영 실태를 조사한다. 약 24만 대에 달하는 충전기의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함으로써 충전 인프라의 관리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완성차 5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의 요청을 받아 전기차 충전기 실태 조사를 위한 연구용역 발주를 검토하고 있다. 전국 단위로 충전 인프라를 조사하는 첫 사례다.

조사에서는 작동 상황, 이용률, 운영사 등 국내에서 운영되는 각 충전기의 구체적인 정보가 집계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통합 관리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의 정책 건의서를 환경부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 업계가 전기차 충전기 실태 조사에 착수한 것은 충전 인프라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다. 그래야 전기차의 대중화도 더 빨라질 수 있다. 충전기가 고장 난 채 방치되거나 이용률이 떨어지는 지역에 설치되는 등 인프라에 관한 불만이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 또한 작용했다.

지금까지 정부와 업계는 전기차 보급 속도를 맞추기 위해 충전기를 최대한 많이 설치하는 양적 확대에 집중했다. 덕분에 충전기 보급률은 빠르게 높아졌다.



국토교통부와 무공해차 통합누리집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3만 대 수준에 머물던 전기차 등록 대수가 지난달 기준 48만 대로 3배 이상 증가할 때 충전기 대수도 6만 대에서 24만 대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충전기 1기당 전기차 대수(차충비)도 올해 8월 기준 2.0대로 낮아졌다. 차충비는 전체 전기차 대수를 충전기 개수로 나눈 수치로 낮을수록 충전 부담이 적다는 의미다. 이는 주요 전기차 선진국과 비교해도 우수한 편이다. 국내 차충비는 유럽(13대), 세계 평균(10대), 중국(8대)을 크게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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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설치 이후다. 양적 팽창에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관리와 운영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전기차 충전 서비스 업체 소프트베리가 운전자 1532명에게 충전기를 이용하면서 가장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묻자 ‘잦은 고장’이라는 응답이 31%로 가장 많았다.

업계에서는 충전기 설치 시 지급되는 보조금을 노리고 중소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점을 원인으로 꼽는다. 전기차 충전 산업은 크게 충전기 생산 업체와 충전사업자(CPO)로 나뉜다. 생산 영역에는 대기업들이 대거 진출한 반면 CPO 영역에는 수많은 업체들이 난립했다. 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에 따르면 현재 전기차 충전사업자로 등록된 업체는 470곳으로 1년 만에 2배 이상 늘어났다. 이 가운데 73%인 345곳이 중소기업이고 개인사업자도 26곳이나 된다.

사업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수리나 서비스 대응이 미흡한 사례도 부지기수다. 사업자 간에 결제 방식이 통일되지 않아 개별 업체의 충전 전용 카드를 수 장씩 발급받는 불편함도 있다. 전기차를 3년째 이용한 A 씨는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에 이용 가능한 충전기라고 표시돼 있어도 막상 가보면 고장 난 곳이 있다”며 “충전사업자마다 결제 방식이 다르고 고객센터와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지방 출장이라도 가는 날이면 충전에서 얻는 스트레스가 크다”고 토로했다.

현대차그룹이 송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에 구축한 전기차 초고속 충전소 이피트(E-pit). 사진 제공=현대차그룹현대차그룹이 송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에 구축한 전기차 초고속 충전소 이피트(E-pit). 사진 제공=현대차그룹


충전기가 적재적소에 설치되지 않은 점 역시 문제로 꼽힌다. 이용자의 충전 패턴을 고려해 차를 장시간 주차해두는 공공 주거 시설에는 완속충전기를, 고속도로 휴게소나 쇼핑몰에는 급속충전기를 집중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회도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발간한 2023년 국정감사 이슈 분석 자료에서 “기존 충전 시설은 설치가 용이한 곳을 중심으로 구축돼 불편하다는 지적이 있으므로 지역 배분, 이용자 접근성, 교통 수요 등을 고려해 구축해야 한다”며 “전국 충전기 정보의 통합 관리, 실시간 모니터링 등 종합 정보 제공을 위한 시스템 고도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완성차 업계는 실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에 정책 건의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부가 한국자동차환경협회에 위탁해 운영하는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을 개선하는 등 이용자 편의를 높이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충전 인프라의 품질을 높이는 작업은 전기차 판매와도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전기차 판매 성장세는 지난해 대비 주춤하고 있다. 수입차를 포함한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전년 대비 63.8% 증가했으나 올 상반기에는 13.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완성차 업계는 실태 조사와 함께 자체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현대차(005380)는 그룹 차원에서 운영하는 자체 초고속 충전소 이피트(E-pit)를 연말까지 44개소로 확대할 예정이며 BMW코리아는 국내에 직접 설치한 충전기를 연내에 1100기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최근 전기차 판매가 주춤하는 것은 충전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라며 “충전 인프라 확충에 완성차 제작사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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