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생강꽃처럼 화들짝

박경희


윗집 사람과 아랫집 사람, 싸움이 났다 담장 넘어온 닭 때문이라지만 두 분 사랑싸움이다 산 고개 여러 번 넘은 정분이지만 딱, 그만큼이다 된장찌개 끓인 날은 아랫집 사람의 순정이 윗집 마루에 슬그머니 놓여 있다 아무렇지 않게 숟가락 빠트리고 싱겁네, 물이 더 들어갔네 구시렁구시렁 웃음으로 넘어간다 마당에 풀어논 닭들이 모이를 쪼아 먹으며 아랫집 담장 밑을 서성이고 윗집 사람 속을 읽는 닭이 그저 모가지만 냈다 뺐다 찍었다 헤치다 요래조래 왔다 갔다 서로 보일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생강꽃처럼 화들짝, 화들짝 눈깔사탕 한 봉다리 뒷짐에 얹고 슬그머니 아랫집 방문 문고리에 걸고 오는, 윗집 사람의 봄날이 생강꽃밭으로 날린다






닭 때문에 싸운 사랑싸움이 김유정의 ‘동백꽃’ 만한 게 있으랴. 강원도 동백꽃이 생강나무꽃인 줄 아직도 모르는 사람 있으랴. 구시렁구시렁 티격태격, 도덕군자보다 적당히 흉보고 욕할 게 있어야 정이 든다. 된장찌개 얻어먹고 눈깔사탕 한 봉다리 받은 아랫집이 무슨 욕을 하며 녹여 먹는지 궁금하다. 키우는 닭도, 닭 모가지 들어올 울도 없는 다세대주택에 살고 있지만, 우리 집 문고리에도 따끈한 음식 걸어 두고 가는 이웃이 산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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