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몰라도 ‘헤드윅’을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조승우·오만석·조정석·조권까지 남성 뮤지컬 스타라면 모두 거쳐간 대중적인 작품이니까요. 뮤지컬의 줄거리는 사실 아주 대중적이지는 않습니다. 성전환에 실패한 트랜스젠더 로커의 이야기이거든요.
이 뮤지컬이 오늘날과 같은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바로 ‘음악’입니다. 아름다운 선율의 클래식과 오페라를 떠올리게 하는 뮤지컬이 많지만 이 작품은 강렬한 록 음악을 내세운 대표적인 ‘록뮤지컬’입니다.
파격적으로 이미지 변신을 한 배우들의 모습이 조금 낯설 수 있지만 대중과 가까운 음악으로 한 예술가의 고뇌를 그리면서 성공을 거뒀죠. 미국에서 1998년 첫 정식 공연 후 영화화되기도 했고 한국에서는 2005년에 처음으로 라이선스 초연을 한 후 2021년까지 장장 열세 번째 시즌을 거쳤습니다.
블루스가 변형된 로큰롤, 뮤지컬을 만나다
록 음악은 1950년대 미국의 ‘로큰롤’ 장르를 토대로 발전한 음악입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음악 장르였던 블루스를 가져와 변형한 것인데요.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보컬로 이뤄진 밴드의 형태가 익숙하죠.
1950년대 로큰롤을 이끈 아이콘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꼽힙니다. 마침 프레슬리의 시대와 로큰롤 음악을 다룬 뮤지컬이 충무아트센터에서 상연하고 있기도 합니다. 뮤지컬 ‘멤피스’는 프레슬리의 음악을 처음으로 라디오에 송출한 기념비적인 인물 DJ 듀이 필립스의 실화를 각색해 만든 작품입니다.
인종차별 정책이 엄격했던 미국의 남부 도시 멤피스에서 듀이를 본딴 캐릭터 ‘휴이’는 흑인 음악을 백인 사회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자처합니다. 그전까지 로큰롤과 블루스는 흑인만이 누릴 수 있는 음악이었습니다. 백인들이 향유하기에는 저급한 음악으로 분류됐죠. 그러나 휴이는 인종에 따라 문화양식을 나누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발버둥칩니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었죠. 작품 속에서 휴이는 흑인 가수인 ‘펠리샤’를 향한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을 노래하죠. 기존의 당연한 것들을 거꾸로 뒤집으며 노래의 힘을 전파하려는 그의 노력은 젊은 세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음악 시장의 저변을 확대하는 계기가 됩니다.
1960년대 미국은 냉전에 들어서고 베트남전쟁을 겪으면서 사회적으로 삼엄한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긴 법일까요. 이 같은 분위기에 맞서려는 흐름이 거세게 일고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등 희대의 밴드들이 등장한 록 음악은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게 됩니다. 브로드웨이에서 한창 발전을 거듭하던 뮤지컬도 록 음악의 영향권 안에 들어서게 되고요.
록 뮤지컬, 고뇌하는 젊은이·청춘을 담는 장르로 재탄생
지금은 이렇게 대중적인 작품이 많지만 록뮤지컬이 처음 등장했을 때 뮤지컬 팬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록뮤지컬의 시초로는 1968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헤어’가 꼽힙니다. 오페라에서 출발해 아름다운 음악과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던 기존 뮤지컬계에서 누드로 배우가 출연하고 욕설이 등장하는 등 파격을 낳은 작품이죠. 보헤미안적인 삶을 사는 히피 그룹이 베트남전쟁에 징집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 편의 거대한 반전(反戰)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세상의 틀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위해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날카로운 청춘을 담아내기에 록 음악만큼 제격인 방식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내게 왜 털이 무성하냐고 물어요, 나는 낮에도 밤에도 털이 많죠. 무서운 일이지만 나는 도처에 털이 나 있어요. 왜냐고 묻지 마요, 나도 알지 못하니까…….” (뮤지컬 ‘헤어’ 중 넘버 ‘헤어’의 일부)
뮤지컬 헤드윅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 속에서 1988년 동독에서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던 소년 ‘한셀’의 희망은 오직 록을 통해서만 반짝입니다. 하지만 여자가 되려고 했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또다시 절망에 사로잡히는데요. 한셀은 ‘헤드윅’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후 록밴드에 몸을 담고 스스로를 치장하면서 온전한 자아를 완성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 아래 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운명의 상대를 찾아 헤매던 헤드윅은 사랑하는 남자 ‘토미’에게 배신을 당하고 불안정한 분노를 쏟아내며 자기 자신을 소모합니다. 하지만 마침내 자신을 떠나간 토미에게 리프라이즈 넘버 ‘위키드 리틀 타운(Wicked Little Town)’을 듣게 되며 오롯이 자신을 바라보게 되죠.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 2’에서 체호프 연극의 여주인공 ‘니나’를 꿈꾸던 탈영병이 ‘헤드윅’의 넘버 ‘위그 인 어 박스(Wig in a Box)’와 ‘미드나잇 라디오(Midnight Radio)’를 부르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막을 내린 ‘트레이스유’는 올해 10주년을 맞은 대표적인 창작 록뮤지컬입니다. 사실 덕후들에게 ‘트레이스유’는 시끄러운 뮤지컬로 유명합니다. 기타의 화려한 소리와 배우들의 짜릿한 록 창법이 보는 내내 귀를 자극했습니다. ‘트레이스유’는 록 장르로 구성된 넘버가 대부분인 만큼 전형적인 록뮤지컬로 꼽힙니다. 사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우빈’과 ‘본하’ 모두 작은 록클럽 ‘드바이’에서 지내는 보컬과 기타리스트이기도 하고요. 귓가를 때리는 넘버로 구성된 이야기의 플롯은 사뭇 간단해보입니다. 보컬인 본하는 한 여자와 만나게 된 후 그가 드바이에 오기를 매일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여자는 오지 않고 본하는 좋아하던 록도 부르지 않고 공연을 무산시키기 일쑤죠. 함께 클럽에서 지내는 우빈은 “내가 널 언제까지 봐줄 것 같냐”면서 본하를 윽박지르지만 요지부동입니다. 이 간단한 이야기 속에서 본하의 그는 결국 드바이를 찾아오게 될까요.
로커의 생애에서 예수의 생애까지…자유와 혁명을 이야기하다
이제 뮤지컬의 어엿한 한 장르가 된 록뮤지컬은 형식과 내용에서 저변을 넓히고 있습니다. 록 오페라 ‘지저스크라이스트슈퍼스타’는 록의 형식으로 예수를 다룬 파격적인 작품이죠. 1971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뮤지컬로 예수의 마지막 7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저스’는 샤우팅 창법을 구사하면서 인간 사회에서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그 파격적인 접근으로 인해 기독교 보수 단체의 항의를 받기도 한 작품이지만 저항을 상징하는 록을 통해 예수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지저스크라이스트슈퍼스타’를 대표하는 넘버 ‘겟세마네’는 배우 마이클 리의 버전이 매우 유명합니다. 고난이도의 샤우팅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모습이라니요.)
하지만 열정적 노래로 자유와 혁명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록뮤지컬의 소명은 변치 않을 듯합니다. 이달 22일 서울 종로구 더굿씨어터에서 개막하는 록뮤지컬 ‘위윌락유’를 수많은 뮤지컬 애호가들이 기다리는 이유겠죠. 록의 대명사나 마찬가지인 영국 밴드 퀸(QUEEN)의 주옥 같은 명곡에 디지털화된 미래 세계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보헤미안의 이야기를 더해 록 음악과 뮤지컬 팬 모두를 설레게 합니다.
이 작품은 영국 도미니언시어터에서 5년간 2000회 이상 공연했고 전 세계적으로 1500만 장의 티켓 판매를 기록했는데요. 영국 최고의 인기 작가 벤 엘톤이 썼고 퀸의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직접 음악에 참여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록의 시대가 영원할 것이라고 했던가요. 최근 힙합이 록의 자리를 대신하며 큰 파급력을 자랑하게 됐지만 아직 뮤지컬에는 자유와 해방의 정신을 강렬하게 노래하는 록이 굳건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록은 아마도 늘 어렵기만 한 현실 속에서 오늘도 한걸음 전진을 꿈꾸는 이들의 목소리를 가장 잘 전달하는 수단이기 때문일 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