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단생산사(團生散死)의 교훈

백만기 국가지식재산위원장





명량해전을 앞두고 조선의 전황은 몹시 어려웠다. 칠천량 해전의 패배로 심대한 타격을 입은 조선 수군은 수로를 통해 진격하는 일본 수군을 막기가 불가능해보였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강조했던 말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다. 충무공은 ‘단생산사(團生散死)’의 정신을 역설하며 병사들을 단결시켰고 세계 최초의 돌격용 철갑선으로 평가받는 거북선과 독창적인 전술로 여러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단생산사 정신이 빛을 발한 사례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은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When we get together, we live. If we break up, we die)”는 말로 통합을 강조했다. 그의 노력으로 13개주로 출발한 미국은 연방 차원의 지식재산제도를 확립해가면서 현재 세계 1위의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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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의 움직임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세계 3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유럽연합(EU)이 특허 분야에서 통합의 결실을 이뤄내고 있다. EU 회원국들이 통합특허법원협정에 서명한 지 10년 만인 올해 6월 유럽통합특허법원(UPC)이 정식으로 출범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유럽특허청에서 한 번의 단일 특허등록을 받거나 통합특허법원에서 한 번의 소송을 제기하면 EU 내 조약 비준국 전체에 효력이 미치게 됐다. 결과적으로 유럽통합특허법원이 침해·무효소송에서 독점적인 소송관할권을 가지게 돼 판결의 전문성과 일관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재권 시장으로만 따지면 세계 1위 미국에 못지않은 거대한 유럽 단일시장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유럽의 변화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재권 소송의 전문화와 국제적인 블록화 현상이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우리의 전략은 무엇이 돼야 할까.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올해 1월 학계·법조계·산업계 등 민간 전문가와 정부 부처 관계자가 함께 참여하는 ‘IP·소송 특위’를 발족했다. 이를 통해 관할집중의 확대와 소송 효율성 제고 등 지재권 관련 소송제도의 전문성과 신뢰성, 예측 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심층 논의해왔다. IP·소송 특위는 지재권 관련 민사소송에서 현재 전속 관할된 특허권 등 5개 권리 외에 업계 수요와 사건의 기술 전문성, 파급력 등을 고려해 관할집중 대상 권리를 확대하고 소송제도의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또 지재권 관련 형사소송에서는 소송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전문성을 가진 법원에서도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관할집중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심층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1998년 설립된 특허법원이 관할집중을 통해 우리나라 지재권 소송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것처럼 점차 강화되는 지재권 소송 전문화와 국가 간 경쟁 격화라는 글로벌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논의는 중요하고 또 시급하다. 연말 시한으로 출범한 특위 운영을 통해 최선의 지재권소송제도 개선 방안이 도출돼 우리나라가 ‘창의성 넘치는 멋진 지식강국’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협력·통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각자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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