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마다 열리는 미국과 유럽의 골프대항전인 라이더컵은 ‘골프 전쟁’이다. 골프 발상지(유럽)와 현대 골프의 중심(미국)이라는 양측의 자존심이 코스에서 정면충돌한다. 신사의 스포츠라는 유의 달콤한 말은 잠시 잊어야 한다. 홈팀 관중들은 상대 팀 선수에게는 온갖 야유를 퍼부으며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자신의 팀 선수들에게는 기운을 북돋는 일방적인 응원전을 펼친다.
라이더컵의 기원은 192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미국에서 디 오픈에 나설 선수들을 선발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브리티시 오픈 챔피언십 펀드’였다. 그때까지 디 오픈에서 우승한 미국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인 1921년 미국 선수들이 배를 타고 영국으로 향했다. 이들은 디 오픈 2주 전 몸을 풀 겸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에서 열리는 글래스고 헤럴드 토너먼트에 출전하기로 했다. 이때 미국과 영국 선수들은 대회 하루 전 각각 10명이 참가하는 팀 대항전을 벌였다. 영국 팀이 이겼다. 마침내 디 오픈. 작 허치슨이 미국 선수 최초로 우승했다. 미국은 단체전에서는 졌지만 원래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었다. 하지만 허치슨은 스코틀랜드 이민자였다. 1922년 월터 하겐이 디 오픈을 제패했다. 미국 태생 선수 최초의 디 오픈 우승이다.
글렌이글스에서의 단체전을 계기로 미국과 영국 선수들은 양측의 큰 대회를 앞두고 소규모로 친선 대항전을 벌였다. 그러다 1926년 영국인 사업가 새무얼 라이더가 미국과 영국의 대항전을 위한 트로피를 내놓기로 하면서 1927년부터 라이더컵이 시작됐다.
초기에는 미국과 영국이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을 이뤘지만 ‘거인’으로 성장한 미국에 영국이 맞서기에는 힘이 부쳤다. 1947년부터 1977년까지의 30년 동안 미국이 패한 건 딱 한 차례에 불과했다. 팽팽한 긴장감을 위해 1979년 대회부터 유럽 대륙을 포함시켰다. 이때부터 미국 대 유럽의 대항전이 됐다. 세베 바예스테로스나 베른하르트 랑거 등의 합류로 전력이 보강된 유럽은 1985년, 1987년, 1989년 대회에서 ‘승-승-무’를 기록하며 3차례 연속 트로피를 차지했다. 라이더컵에서는 비기면 직전 대회 우승팀이 트로피를 그대로 보유한다.
자존심이 상한 미국은 안방에서 치르는 1991년 대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설욕하고 싶었다. 대회 개막 전 오프닝 디너 때부터 유럽을 자극했다. 파티 도중 2개의 영상을 틀었는데 첫 번째는 과거 라이더컵 하이라이트로 거의 미국 팀 활약상만 보여줬다. 두 번째 영상은 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환영 연설이었는데 일방적인 미국 팀 응원이었다.
대회에서도 파열음은 이어졌다. 미국의 폴 에이징어와 유럽의 바예스테로스가 동일 모델 볼을 사용해야 한다는 ‘원 볼’ 규정을 두고 다퉜다. 첫날 포섬 매치 중 볼을 바꿨던 에이징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하자, 바예스테로스는 “부정행위가 아니라 룰 위반을 말하는 거다”고 맞섰다. 경기 후 바예스테로스는 “미국에는 11명의 멋진 선수와 폴 에이징어가 있다”고 비꼬았다. 이 해 미국이 1점 차로 이겼다. 미국 선수들은 기뻐서, 유럽 선수들은 분해서 울었다.
역대 전적에서는 미국(27승2무14패)이 앞서지만 최근 10차례의 경기에서는 유럽이 7승3패로 우세하다. 특히 호화 멤버로 구성된 미국은 6차례의 유럽 원정에서 전패를 당했다. 2018년 파리 대회 때 유럽은 미국을 17.5 대 10.5의 압도적인 차이로 눌렀다. ‘파리대첩’에 들뜬 관중들은 “유럽은 승리의 불꽃을 피우고, 미국은 겁먹었다”고 조롱했다. 패배 후 미국 팀은 선수들끼리 충돌하는 등 내홍에 휩싸였다.
하지만 미국은 2021년 다시 안방에서 맞은 대회에서 유럽을 19대 9로 대파하며 2년 전 아픔을 설욕했다. 미국은 축제분위기였지만 유럽의 로리 매킬로이는 눈물을 보이며 2년 뒤 이기겠다고 다짐했다.
오는 29일부터 사흘간 이탈리아 로마의 마르코 시모네 골프장에서 마흔네 번째 라이더컵이 열린다. 라이더컵이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건 처음이다. 2018년 유럽 우승의 주역 중 한 명이던 프란체스코 몰리나리도 고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부단장으로 참가한다. 유럽 문명의 꽃을 피운 로마에서 유럽은 안방 불패의 신화를, 미국은 2연패를 통한 악몽 탈출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