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1년 유예할 경우 국제 사회에서 국가·기업 신뢰도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파이낸스센터(GFC)에 위치한 삼정KPMG 본사에서 서울경제 취재진과 만난 하노 뉴하우스 독일 KPMG 감사부문 파트너는 “한국 정부 당국이 ESG 공시 의무화 일정 유예를 논의한다는 소식에 놀랐다”며 이 같이 밝혔다. 최근 금융 당국이 국내 기업들의 요구로 ESG 공시 의무화 시기를 기존 2025년에서 2026년으로 1년 유예하는 안을 검토하는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강조한 셈이다. 뉴하우스 파트너는 2021년부터 독일KPMG ESG 서비스 그룹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유럽연합(EU)에 진출한 한국과 일본 기업에 주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뉴하우스 파트너는 한국 글로벌 기업의 ESG 준비를 두고 “속 빈 강정”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는 “EU에서는 한국의 글로벌 기업이 ESG 전담 조직을 갖춘 데다 자체적으로 지속가능성 보고서도 내고 있어 공시를 착실히 준비하는 줄 알았다”며 “한국 당국이 ESG 공시 의무화를 유예하면 밖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정보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글로벌 기업의 ESG 신뢰도 하락은 영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 있다”며 “폭스바겐, 르노, BMW 등 EU 완성차 업체는 협력 업체에 높은 수준의 ESG를 요구한다. 이들이 한국 기업의 ESG 정보를 믿지 못하면 납품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EU는 우리나라보다 앞서 ESG 공시 의무화 과정을 밟고 있다. EU는 지난 1월 6일 유럽의 ESG 공시 기준인 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을 발효했다. CSRD에 따르면 모든 EU 상장사는 2024 회계연도부터 의무적으로 ESG 경영 사항을 공시해야 한다. 최근 몇 년 간 EU 기업들은 ESG 역량과 거버넌스를 심혈을 기울여 구축해 왔다.
뉴하우스 파트너는 “독일 중소기업의 경우 정부의 금전적 지원이 없이도 탄소배출량 측정 관련 장비 설치 등 한국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토로하는 추가 비용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다”며 “ESG 정보 공시에 필요한 데이터 확보 기반이 이미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에 동석한 손민 삼정KPMG ESG CoE(Center of Excellence) 상무는 “유럽에서도 ESG 공시 도입 초기에는 전문가급 인력이 부족으로 고임금을 주며 영입 경쟁이 벌어졌다”며 “독일 대표 기업 지멘스는 최근 ESG 공시전담인력을 대폭 늘렸고, 그 결과 재무보고 조직에 버금가는 규모의 ESG 조직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정보기술(IT) 인프라 부문에서 기존 시스템을 활용해 추가 투자 비용을 최소화한 게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뉴하우스 파트너는 ESG 공시가 당장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자금 조달, 고객사 확보 가능성을 따져보면 오히려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공시 성과 우수 기업에 ESG 채권 발행 금리 0.5%포인트 할인 혜택 등을 주기에 EU의 많은 기업은 앞다퉈 관련 공시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삼정KPMG ESG CoE 상무는 “EU에서는 중앙 정부가 ESG 정책을 확고하게 지원하니 시장 투자자도 확신을 갖는다”며 “반면 국내에서는 ESG 채권을 발행할 때 수천만 원 상당의 비용만 들 뿐 금리 등에 대한 이점이 없어 공시 정책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