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4일 “올해 연료비연동제에 따라 (전기요금을) ㎾h당 45.3원 인상해야 했는데 (그간의 인상 분은) 이에 못 미쳤다”며 “기준연료비(전력량요금)라도 제대로 다 인상하려면 25.9원 추가로 올려야 한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이날 세종 청사에서 열린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전기요금이 인상되지 않고는 한전 재무 상황은 더 악화돼 회사채 발행을 비롯한 차입 한계에 부닥치고 전력 생태계도 붕괴될 것”이라며 이같이 호소했다.
한전채 잔액은 지난달 말 별도 기준 80조 1000억 원까지 불어난 상태다. 차입금도 올 상반기 131조 4000억 원으로 하루에 내는 이자만 118억 원에 달한다. 김 사장의 전기료 인상 언급은 이런 절박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한전이라는 공기업 하나를 살리는 개념이 아니라 에너지 대전환 시대에 대한민국의 미래 신성장 동력 육성의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제 연료 가격 폭등과 고환율이 겹치면서 발전 원가가 대폭 상승했음에도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못하면서 만들어진 역마진 구조를 끊어내야 한다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상반기 일시적으로 완화됐던 역마진 구조가 최근 국제유가 급등으로 다시 확대될 조짐이라 자칫 한전채발(發) 채권시장 교란 등 지난해 악몽이 반복될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한전은 4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 결정에 앞서 자구책부터 내놓는다. 김 사장은 파격적인 자구안을 2~3주 내에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과감한) 인력 효율화와 매각 가능 자산 발굴 등을 통해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과거에 상상할 수 없었던 ‘특단의 2차 추가 자구안’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한전은 당초 2급(부장급) 이상에 한해 올해 임금 인상분 전액, 3급(차장급)의 경우 절반을 반납하기로 했는데 실무위원회를 통해 전 직원의 자발적인 전액 반납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임금 삭감에 대해서는 노조의 반발 등을 의식한 듯 난색을 표했다. 김 사장은 “(201조 원에 달하는) 누적된 부채에 비하면 아무리 짜내고 짜내도 작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조직 규모 축소나 인력 효율화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하겠다”고 설명했다.
한전으로서는 자구책을 통해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려야 한다. 그러나 전기 사용이 많은 겨울철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4분기 전기료를 손대기 쉽지 않다는 게 시장의 지배적 여론이다.
한전은 2022~2026년 25조 7000억 원(한전 18조 1000억 원, 그룹사 7조 6000억 원) 규모의 재무 개선 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올해 8월까지 전체 이행률은 36.5%(9조 4000억 원)였다. 한전이 35.6%(6조 4000억 원), 그룹사가 39.5%(3조 원)를 달성했다. 비용 절감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자본 확충이나 수익 확대, 자산 매각은 시장 여건상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김 사장은 “기존에 발표한 재무 개선 계획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4선 국회의원 출신인 김 사장은 총선 때마다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는 전기요금 결정 체계 개편의 필요성에도 공감했다. 그는 “(기준금리처럼) 전기요금도 독립된 기관에서 연료비 원가에 연동해서 결정하는 것이 어떤 정부가 됐든 국정운영의 부담도 덜고 국민 수용성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