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규제는 놔두고 가격압박만 하는 정부 [기자의 눈]

황동건 생활산업부 기자


“물가 안정에 기여하고 싶지만 편의점도 힘듭니다.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몇 주 전 만난 편의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그의 우려는 10월 들어 현실이 됐다. 식품 제조사가 공급가를 올렸는데도 불구하고 올 7월 아이스크림 판매가를 동결했던 편의점 업계가 10월 흰우유 값 인상은 막지 못했다.

높아진 원유(原乳) 가격은 본격적으로 완제품 소비자가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밀크플레이션 위기감에 농림축산식품부도 4일 서울 양재동 농협하나로마트를 찾아 현장을 점검했다. 흰우유 가격을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선 내에서 방어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공식적으로는 할인 판매와 묶음 상품 등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지만 유통사들이 받은 압박감도 상당했다는 게 현장의 분위기다.



특히 소비자들의 생활 물가와 밀접한 편의점이 곤란한 모양새다. 편의점업은 개별 점포의 판매 이익을 점주와 가맹 본부가 나누는 구조다. 공급 원가가 인상된 상품의 소매가를 따라 올리지 않을 경우 본사가 이익을 깎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주들의 몫이 줄어든다. 어느 쪽이든 선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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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이 있긴 하다. 식품 제조사들이 판촉 비용을 지원해주거나 이미 공급한 상품 대금을 감액해 부담을 나누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대규모유통업법으로 제한된다. 이 법이 편의점 가맹 본부를 대규모유통업자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거래상 약자를 보호한다는 법 제정 취지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유통업법은 백화점·대형마트와 같은 유통사의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 ‘갑질’로부터 제조 업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2011년 제정됐다.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은 편의점 가맹 점주까지 한데 묶여 대형 식품 제조사보다 우월한 법적 지위를 가진 것으로 해석되는 셈이다.

편의점 가맹 본부와 점주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물류·전산망 구축과 컨설팅, 판촉 활동 등의 지원도 본부의 역할 중 하나다. 물가 인상 국면에서 가맹 본부의 희생이 강요된다면 점주들에게 쓸 재원과 투자를 줄일 우려가 커진다. 대규모유통업법이 지역 단위 소상공인을 오히려 규제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황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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