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000270) 노사가 ‘현대판 음서제’로 불려왔던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 조항을 삭제·수정하는 데 합의했다. 기아 노조가 3년 만의 파업에 돌입하기 직전까지 가게 만든 이 조항은 단체협약 27조 1항으로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 가족 1인,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25년 이상)의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규정이다.
이 조항은 기아 안팎에서 고용 세습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고용노동부도 지난해 11월부터 해당 조항 폐지를 압박해왔다. 사측은 2014년부터 고용 세습 문구 삭제를 요구해왔지만 노조는 “실제 채용에서 적용된 사례가 없다”며 반대해왔다. 비슷한 단협을 유지해왔던 현대차(005380)는 노사 합의로 2019년 해당 문구를 삭제했다.
이번 임금 협상에서도 해당 조항은 쟁점으로 부각됐다. 노사는 임금 및 성과금에서 큰 틀의 합의를 봤지만 고용 세습 조항의 삭제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신경전을 벌였다. 노조는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맞섰다. 노조는 그러나 정부가 시정 명령을 내려 사측도 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에서 수십 년째 사문화된 조항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결국 사측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노사는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의 자녀에 대해 우선 채용한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재직 중 질병’이라는 문구는 ‘업무상 질병’으로 수정했다. 2020년 대법원이 전원 합의체를 열어 “산재 사망자 유족을 특별 채용하게 한 단협 규정은 유효하다”고 한 판결을 반영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조가 고용 세습 조항 유지와 관련해 내부 반발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날 노조 게시판에는 ‘일자리가 없어 모두가 힘든데 아버지가 직원이라는 이유로 불평등하게 입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현대차에도 없는 것을 계속 가지고 가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조합원의 이익을 우선하라’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