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성공시키며 동아건설을 국내 최고 건설사로 키워낸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80세.
최준문 동아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최 전 회장은 대전에서 태어나 한양대 경제학과, 미국 조지타운대를 졸업했으며 1968년 동아건설 대표이사 사장으로 경영을 시작했다. 이후 대한통운 대표이사 사장, 대전문화방송 사장, 동아생명 회장 등을 거쳐 1978년 동아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최 전 회장은 남다른 사업 수완을 발휘하며 1983년 단일 토목공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꼽히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수주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난도가 높은 프로젝트였다. 동아그룹은 세계 대형 건설 업체들과 경쟁 끝에 리비아 대수로 1단계 공사를 수주해 누수율 0%를 기록하는 등 완벽한 공사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90년 62억 달러 규모의 2단계 공사, 1998년 51억 달러 규모의 3단계 공사를 모두 따냈다.
사하라 남부에 매장된 지하수를 끌어올려 리비아에 공급하는 대형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동아건설은 현대건설과 함께 국내 최고 건설사로 자리매김했으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당시 리비아를 집권하던 무아마르 카다피가 고인에게 국가원수 수준의 대우를 해줬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 공사를 이끈 최 전 회장은 세계 대백과사전인 브리태니커에 이름을 올렸고 리비아에서는 사막을 농지로 바꾼 인물로 ‘불도저’ ‘빅맨’ 등으로 불렸다.
최 전 회장은 남다른 추진력으로 동아그룹을 한때 계열사 22곳을 거느린 재계 10위 기업으로 키웠다. 그러나 동아건설이 시공한 성수대교가 1994년 붕괴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금리가 폭등하고 미분양이 급증하며 그룹의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고인은 1998년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사임했으나 동아건설은 그해 워크아웃에 들어갔으며 결국 2001년 파산 선고를 받았다. 2004년 분식 회계, 배임, 불법 사기 대출 등의 혐의로 법정 구속되기도 했던 최 전 회장은 2008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고인은 1985년부터 학교 법인인 공산학원의 이사장직을 맡아왔다. 동아방송예술대와 동아마이스터고 등이 이 학원에 속해 있다.
고인은 1981년부터 대한체육회 이사 및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1988)을 받았다. 요르단왕국 독립훈장, 금탑산업훈장 등도 받았다.
올해 6월에는 MBC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시한부 투병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병명을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동아그룹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며 그룹 해체 과정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발인은 28일 오전 7시다. 유족으로는 아들 최우진·최용혁·최재혁, 딸 최선희·최유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