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내가 살거나 가족이 살림을 꾸리는 것, 그리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대규모 주거 공급 체계인 아파트는 태생적으로 세대가 단절돼 있어 이웃과 함께 산다는 의미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전원주택 단지라 할지라도 높은 옹벽 담장과 건조한 아스팔트 도로로 포장돼 있다면 갇혀있는 형국은 아파트와 유사하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209에 12가구로 구성된 ‘강화바람언덕 협동조합주택’은 ‘함께 살기 위해’ 만들어진 주택 단지다. 마을 중앙에는 담장과 아스팔트가 사라진 대신 온전한 사람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으며 초입의 공용 건물도 낮에는 지역도서관, 저녁에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마을과 동네와 연결한다. 강화바람언덕 협동조합주택이 2023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주택 부문 대상을 수상한 것은 실제 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어디에, 어떻게, 집을 짓는가에 대한 진지한 숙의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마을은 2018년 강화도에 거주하고 있는 몇 사람들이 하우징쿱협동조합주택에 주택 건립을 의뢰하며 시작됐다. 수 개월에 거쳐 부지를 물색했고 남측을 향해 시야기 열리고 등을 지는 북쪽은 수림이 감싸지는 1700여 평, 대략 15m 정도의 고도차가 있는 계단형 필지에 터를 잡았다. 이곳에 주민들은 자동차에 잠식 당하지 않은 사람들의 공간과 주민 모두가 남측 전경을 공유하길 바랬다. 집 경계를 허물어 외부공간을 함께 가꾸고 공동체가 활용할 수 있는 공유 공간도 확보해줄 것을 부탁했다.
설계를 맡은 윤승현 중앙대학교 교수와 건축사사무소인터커드는 두 집이 이어진 단지형 다세대주택을 건립하고 공용 주차장을 확보했다. 포장 영역은 비상시의 진입을 위한 최소의 폭으로 설정해 녹색의 풍경이 전체 마을을 엮도록 도왔다. 덕분에 마을 안은 온전히 사람의 영역이 될 수 있었다.
풍경과 높이차를 위한 벽 외에 담장은 없앴다. 각자의 영역은 있지만 선으로 그어 구분하지 않아 모두가 함께 공유하도록 했다. 지붕은 윗집의 시야가 가려지지 않도록 박공형식을 활용해 남서쪽의 경작지와 바다를 주민 모두가 볼 수 있게 했다. 닫혀지지 않은 공간의 연계가 이뤄진 것이다.
마을 초입에는 커뮤니티 센터를 두고 지역도서관을 유치했다. 동네 아이들과 주민들이 이용하며 닫힌 마을이 아닌 동네 속 마을이 되도록 했다. 설계자는 “청년주택도 마을에 유치하려 했으나 빠듯한 예산으로 포기한 것이 매우 아쉬울 뿐”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열두 채의 집을 어떻게 구상할 지는 매우 어려운 숙제였다. 설계사는 한적한 장소에 지어지는 환경의 특성을 고려해 개방된 공간을 구상한 두 가지 평면타입을 제시해 선택하도록 했다. 이후 선택된 유형을 기준으로 개별의 조합원들과 미팅을 통해 맞춤형 주택이 될 수 있도록 변형했다. 열두 채의 집은 각기 다르면서도 두 집간의 조형원리가 디자인 연속성을 지니며 전체 마을의 조형을 한데 묶는다.
심사위원은 “‘강화바람언덕 협동조합주택’이 이룬 함께 사는 논리는 대규모 아파트 위주의 주거 공급체계에 대항하기에는 연약해 보이지만 인상적인 대안임에 틀림없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