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속절없이 추락하면서 3일 원·엔 환율이 870원대까지 떨어졌다. 나 홀로 ‘돈 풀기’ 기조를 고집해온 일본의 통화정책이 엔화를 급격히 끌어내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올해 탈중국 자본의 본격 유입 등으로 일본 경제성장률이 2.0%(일본중앙은행 10월 전망 기준)에 달할 정도로 괜찮은 상황에서 경제 펀더멘털의 총합이라는 통화 가치가 급락하자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일본 정부는 역대급 엔저를 통해 고질적 디플레이션을 완화하고 수출 경쟁력 제고에 방점을 두는 모습이다. 실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이날 경기 부양을 위해 13조 1000억 엔(약 116조 7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나친 엔화 가치 하락이 소비 여력을 떨어뜨려 성장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100엔당 879.93원을 기록해 15년 8개월 만에 880원대가 무너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초입인 2008년 2월 27일(879.03원) 이후 가장 낮다. 연중 최고점(4월 27일·1001.61원)과 비교하면 6개월 새 120원 넘게 빠졌다.
엔화 가치 급락은 일본과 미국·유럽의 통화정책 ‘디커플링(탈동조화)’ 영향 탓이다. 미국·유럽 등과 달리 일본중앙은행(BOJ)은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하며 디플레이션 탈출을 꾀하고 있다.
일본 당국도 적극적으로 시장 개입에 나서지 않은 채 사실상 엔화 급락을 용인하면서 엔화 투매 현상이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연말부터 엔화가 강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지만 전문가의 상당수는 당분간 엔화 약세가 지속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엔저가 지속되면 수출에 유리하고 디플레이션을 해결하는 데도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서 “일본 정부가 이번 엔저를 기회로 보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올 때까지 당분간 엔화 가치 하락 국면을 계속 이어가려 할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