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로 국제 금융 시장이 요동을 쳤다. 한국에서도 이번 전쟁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느라 바빴다. 세계 금융 시장에서 고금리 지속, 반도체 시장의 냉각 등으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시기에 전쟁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에 따른 경제적 여파를 예측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전쟁 발발 직전인 10월 6일 배럴당 82.79달러였던 국제 원유 가격은 10월 9일 3.6% 상승해 86.38달러를 기록했다. 이후 전쟁 진행 상황에 따라 원유 가격이 변동해 한때는 배럴당 88달러를 웃돌기도 했다. 전쟁으로 인한 원유 가격의 변동성 확대는 피할 수 없으나 이번 전쟁이 원유 가격 수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3개월 동안 유가 움직임을 살펴보면 가장 높았던 때는 9월 27일로 배럴당 93.68달러였다.
전쟁 발발 이전인 9월 27일 유가가 상승한 이유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의 원유 감산 결정이었다. 하지만 원유 시장에서 OPEC 국가들의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아서 유가는 전쟁 발발 직전에는 82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가 무력 충돌 이후 상승한 뒤 최근에는 80달러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셰일 오일 추출 기술 개발로 미국이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됐다는 점, 2000년대 이후 국제 원유 가격의 움직임은 OPEC의 영향력보다 세계 경기 변동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유가 수준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갈등이 커져 사우디아라비아·이란 등 원유 생산 국가에서 원유 생산 시설이 직접적으로 파괴되거나 미국·러시아·중국 등 강대국들이 참전하지 않는 한 유가가 오르고 내리는 변동성은 증가하더라도 유가 수준에 대한 지속적인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불안한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유가 상승이 제한적이라고 하더라도 전쟁은 불확실성을 키워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경제학계에서는 불확실성의 변화가 거시경제 변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다수 보고되고 있다. 특히 불확실성이 상승할 때는 달러의 가치가 강세인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번 전쟁 발발 후 원화와 달러 간 관계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긴 연휴가 끝난 직후인 10월 11일 1342원 하던 원·달러 환율이 전쟁의 여파가 반영되자 순식간에 1350원을 돌파하고 10월 19일에는 1359원까지 올랐다. 다행스럽게 최근 미국의 금리 동결로 연내 추가 금리 상승 가능성이 낮아짐에 따라 환율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로 인한 불확실성 확대는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여부와 함께 환율 변동의 주원인으로 판단된다.
전쟁에서 비롯된 불확실성 증가에 따른 환율 상승의 경제적 여파는 자명하다. 단기적으로 물가가 상승한다. 코로나19 기간 증가된 유동성으로 발생한 고물가 현상이 진정되고 있는 와중에 환율 급등은 수입되는 원자재와 재화의 가격을 즉각적으로 상승시켜 국내 물가를 다시 올릴 수 있다. 또 고환율이 고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민간의 기대 물가 상승률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높은 인플레이션율이 고착화될 수 있다. 국내 경기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 증가가 불러온 환율 상승과 물가 불안으로 국내 경제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의 정책 담당자들이 긴축 정책을 펼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불확실성과 뜨거운 미국 경제 상황으로 미국 금리가 다시 상승한다면 원화 가치에 대해 회의적인 평가가 국제 외환 시장에서 팽배해져 환율 추가 급등으로 더 어려운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외환 보유액이 충분하다고 하지만 불확실성 증대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벌어질 수 있는 재난적인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당국이 불확실성 해소만 기다리는 소극적인 정책이 아닌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포함한 적극적인 대비책을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