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9~10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미중 갈등을 풀기 위한 논의를 할 것으로 관측되면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허 부총리의 베이징 만남이 새삼 주목 받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경제책사’로 불리는 허 부총리와 역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으로 손꼽히는 옐런 장관과의 만남은 미중 정상회담의 사전 접촉 성격을 갖는다. 이 때문에 최근 10년 동안 세계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펜데믹에 우크라이나-러시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겹치며 불확실성에 빠진 세계 경제의 재편을 위해 제한적이나마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중 관계와 연동될 수밖에 없는 한중 관계 특성 상 허 부총리와 김 지사와의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앞서 한중관계 발전과 지방정부 교류 강화를 위해 중국을 방문 중이던 김 지사는 지난 2일 오후(현지시간) 중국 공산당 경제정책 결정 최고기관인 베이징 중앙재경위원회에서 허 부총리를 면담했다. 직전까지 성사를 낙관할 수는 없었다. 급사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의 영결식이 같은 날 베이징에서 엄수되면서 허 부총리는 중국 지도부 일원으로서 영결식 준비로 시간이 빠듯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허 부총리가 만남을 코앞에 두고 중국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중앙재정경제위원회 판공실 주임의 중책을 맡아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중앙금융공작회의를 조율해야했던 상황도 변수였다.
하지만 허 부총리는 흔쾌히 면담에 응했고, 예정된 시간을 30분 이상 훌쩍 넘긴 1시간30분 동안 긴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경색국면의 한중관계 회복을 위한 공동노력과 지방정부 교류 강화를 위한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수사적인 의견일치와는 별개로 이날 두 사람의 만남에 배석한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중국 측이 김 지사와의 만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중국 측 주요 배석자는 한원슈 중앙재정경제위원회 판공실 부주임, 쉬서우번 국무원 부비서장, 쑨웨이둥 외교부 부부장 등이다.
우선 한원슈 부주임은 그동안 미국의 중국 경제제재를 비판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외국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는 중앙재정경제위원회의 ‘입’ 역할을 맡았다.
또한 쉬서우번 부비서장은 중국공상은행 부행장, 국가개발은행 부행장, 당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 올해 8월 국무원 부비서장 자리에 오른 금융전문가로 직책상 리창 국무원 총리의 부비서실장 역할을 맡으면서 ‘경제통’ 허 부총리를 보좌하고 있다.
여기에 쑨웨이둥 부부장은 지난 4월 외신 인터뷰에서 일촉즉발의 양안 관계에 우려를 표한 윤석열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판해 주목받은 인물로 중국 외교부의 ‘매파’로 활동해왔다.
시 주석 집권 3기 들어서 최고 실세 중 한 명으로 부각된 허 부총리를 중심으로 중국 정부 운영의 두 축인 경제와 외교의 중량급 인사들이 두루 포진한 셈이다.
대한민국 경제부총리를 지냈다고 하지만 정부 여당도 아닌 야당 소속 경기도지사와의 만남에 거물급 인사들이 자리한 것을 두고서 여러 분석이 나왔다.
특히 허 부총리가 트럼프 정부 시절 미중무역전쟁에 중국 측 대표협상자로 나서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한 류허 전 국무원 부총리의 바통을 이어받은 거물급이라는 점에서 유난히 ‘급’과 ‘격’을 중시하는 중국 사회에서 이번 만남은 이례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다.
두 사람의 면담에 배석한 경기도 관계자는 “최근 한중관계를 봤을 때 이번 면담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며 “한중 양국에서 ‘경제통’으로 불리는 김 지사와 허 부총리 간 개인적 인연에 경기도의 발전잠재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12월 경제부총리 자격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수행한 김 지사는 중국 재정부 등 3대 경제부처 수장들과 면담했다. 허 부총리는 당시 중국의 경제계획 총괄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으로 김 지사와 경제 협력관계 복원과 발전을 위한 한중경제장관회의 개최 등에 합의한 인연이 있다.
베이징 외교가에 정통한 한 인사는 “개인적 인연도 있겠지만 김 지사와 허 부총리의 만남이 미중관계 개선에 앞서 한중관계 복원을 염두에 둔 중국정부, 특히 시 주석의 의중이 일정 부분 작용한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과거 한중관계 복원에 역할을 한 김 지사를 경색된 한중관계 개선을 위한 우회통로로 점찍었다는 얘기다.
지한파로 알려진 닝푸쿠이 전 주한 중국대사는 ““김 지사와 허 부총리 만남의 의미가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지사로서 왔지만 지사 역할은 지방정부의 틀을 넘어섰고, 더 큰 역할을 발휘할 것이라고 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