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존슨 하원의장, 은행계좌가 없다?

캐서린 람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존슨 의장 가구소득, 상위권 들지만

'금융자산 제로' 재산신고 의문 키워

선출 공직자 재정도 유권자 알권리

본인 금전문제 여부 솔직히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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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계좌가 없는 미국인 가구는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미국의 대통령 계승 서열 2위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그들 가운데 포함돼 있다. 존슨 의장이 지난해 제출한 연례 공직자 재산신고서에 따르면 그의 금융자산은 제로다. 은퇴연금, 머니마켓펀드, 주식이나 암호화폐는 물론 기본적인 은행 당좌 계좌나 저축예금 계좌조차 없다. 그가 의회에 처음 입성한 201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재산 공개 내역을 살펴봐도 은행 계좌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건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이 받는 세비를 어디에 보관하는 것일까. 당좌 계좌가 없는데 각종 고지서와 청구서 대금은 어떻게 납부할까. 지난 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 도중 이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존슨 의장은 “원래 가진 것이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의회에 들어오기 전 “비영리기관에서 일했다”는 그는 자녀 4~5명의 학비를 언급하면서 “돈 들어가는 곳이 워낙 많다”고도 했다. 존슨 의장은 소방관의 아들로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근로 가정의 어려운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말로 답변을 끝냈고 폭스뉴스 앵커 역시 재정 문제에 관한 추가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둘 사이의 동문서답은 궁금증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을 자아냈다. 그는 자녀들의 학비를 어떻게 지불할까. 매트리스 밑에 감춰둔 현금이나 숨겨둔 금화로 지불하는 걸까.

존슨 의장 사무실은 재산 공개 내역과 관련해 필자가 보낸 수차례의 질의서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재산공개서는 몇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하지만 어느 것이건 우려를 자아내긴 마찬가지다.



첫 번째 가설은 ‘계좌 폐쇄’다. 시중은행은 계좌 유지에 필요한 최저 잔액, 혹은 사용 수수료를 감당할 만한 재정 능력이 없는 극빈자들의 계좌를 닫아버린다. 그러나 이런 가설은 연방 의원들이 연 17만 4000달러의 세비를 받는다는 사실 앞에서 무색해진다. 하원 의장이 되면 세비는 22만 3500달러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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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는 존슨 의장이 올리는 소득의 전부가 아니다. 리버티유니버시티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 3만 달러의 연봉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부인도 복수의 소득원을 갖고 있다. 최근의 공직자 재산보고서에는 정확한 자산 규모가 나와 있지 않지만 이전 몇 년간의 자료에 근거한 존슨 의장의 가구 소득은 최소한 21만 1000달러로 소득 상위권 10% 안에 속한다. 물론 존슨 의장이 대놓고 금융자산을 공개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허위 재산 신고는 연방법에 위배되는 범법 행위이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써가며 별 것도 아닌 은행 계좌 보유 여부에 관한 정보를 숨길 이유가 없다.

또 다른 가설은 하원 윤리 규정에 따라 신고 의무가 없는 무이자 은행 계좌만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근래의 인플레이션 환경을 감안하면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이상한 선택이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조금 더 그럴 듯한 가설은 그의 은행 통장 잔액이 의무적 신고를 요구하는 최저 기준선을 밑돈다는 것이다. 배우자와 부양 자녀를 포함한 가구 구성원 전체의 은행 잔액 합산액이 5000달러 이상일 경우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할 개별 계좌의 최저 잔액은 1000달러다.

이들 가운데 어떤 가설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전문가들은 존슨 의장이 실제로 이들 중 어느 한쪽에 속해 있다면 그가 입에 풀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힘든 생활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입을 모은다. 돈이 들어오기 무섭게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너나없이 돈 문제에 시달린다. 그건 타인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직자의 경우는 다르다. 그가 자유세계의 지도자건, 한 집안의 가장이건 대중에게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공직자가 심각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여부를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금전 문제에 시달리는 공직자는 비도덕적인 인물, 혹은 정치적 영향력을 매수하려는 개인이나 이익집단의 목표가 되거나 급전 마련을 위해 선거 자금을 전용하는 등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공직자의 재산 공개를 의무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인들은 공직자가 진정으로 대중의 이익에 봉사하는지 아니면 일신상의 이익을 추구하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존슨 의장은 더 이상 질문을 회피하지 말고 본인의 재정 상태를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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