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물가 상승률이 빠르게 둔화해 2년간 진행된 중앙은행들의 물가와의 전쟁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16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의 10월 물가 상승률(전년 대비)은 3%대 초반(3.2%)까지 내려왔고 유로존도 2%대(2.9%)를 기록했다. 선진국 중에서 유독 물가 둔화세가 더뎠던 영국도 4.6%로 2년 만에 최저를 나타냈다. 네덜란드의 10월 물가는 아예 마이너스(-0.4%)였다. 물론 지난해 10월 물가 상승률이 에너지 가격 급등의 여파로 14.1%나 급등한 기저 효과의 영향이 크지만 네덜란드의 물가가 마이너스를 보인 것은 블룸버그에서 비교 가능한 1997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 최대 소매점 월마트 대표는 디플레이션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앞으로 몇 달 안에 미국은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며 “식품과 소모품이 몇 주, 몇 달 내로 하락하는 것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월마트가 공개한 올해 순이익 전망치는 주당 6.40~6.48달러로 시장 전망(6.5달러)을 밑돌면서 주가는 오전 장중 7% 넘게 급락했다.
인플레이션에 제동이 걸리면서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스테판 겔락 전 아일랜드 중앙은행 부총재는 “확실히 인플레이션의 전환점에 있다”며 “중앙은행들이 내년에 금리를 1.5%포인트 내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WSJ는 시장에서 본 내년 5월 이전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확률이 미국의 10월 물가지표가 나오기 직전인 13일에는 23%에 불과했지만 지표가 나오자 86%까지 급등했다고 전했다. 모건스탠리는 영국 중앙은행(BOE)이 내년 5월,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이 6월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관측했다.
다만 많은 전문가들이 팬데믹 때와 같은 초저금리 시대가 돌아오기는 힘들다고 보고 있다. 세계적인 고령화로 노동력이 부족해 임금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으로 제품 생산 비용도 올라 물가에 구조적 상방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