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美 규제에도 中 파운드리는 질주…삼성 뒤 노린 비장의 무기는 [biz-플러스]

中 SMIC, 레거시 생산능력 대폭 확장

선단 경쟁 밀리자 구공정으로 전환

中, 레거시만으로 파운드리 10% 차지

과거 시장 내준 LCD 상황 되풀이 우려도

중국 SMIC 본사 전경. 연합뉴스중국 SMIC 본사 전경. 연합뉴스




삼삼성전자의 국내 반도체 생산 거점인 경기 평택캠퍼스를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 평택 3라인(P3)은 올해 하반기부터 파운드리 제품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사진 제공=삼성전자삼삼성전자의 국내 반도체 생산 거점인 경기 평택캠퍼스를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 평택 3라인(P3)은 올해 하반기부터 파운드리 제품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계가 미국의 고강도 기술 제재를 우회해 레거시(구형) 공정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장비 반입 규제로 최선단 경쟁이 어려워지자 ‘알짜’로 꼽히는 7㎚(나노미터·10억 분의 1m) 이상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 파운드리 생태계를 공략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디스플레이나 배터리 시장에서 사용했던 시장 장악 전략을 재현하려는 것 아니냐며 불안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중국, 레거시 파운드리 약진…SMIC “올해 75억 달러 투자”




21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1위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최근 8인치 웨이퍼 환산 기준 월 79만 5750장의 생산 능력을 보유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 생산 능력인 월 70만 6000장보다 12% 늘었다. SMIC는 2021년에는 연간 45억 달러였던 시설 투자액도 올해 75억 달러까지 늘려 잡았다.

미국이 중국 업체에 대해 극자외선(EUV) 장비 수출 제한을 발표하자 시장에서는 “중국 파운드리 업계에 대한 사형선고”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위기 속에서도 레거시 파운드리 위주로 생산 능력을 빠르게 확장해가면서 오히려 시장을 확장했다. 삼성전자(005930)나 TSMC 등 파운드리 기업들이 첨단 공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면서 경쟁하고 있지만 이 기업들도 실제 수익의 절반가량은 레거시 공정에서 올리고 있다. 레거시 공정에서 경쟁력을 뺏길 경우 수익성이 낮아지고 이에 따라 투자 여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레거시 파운드리는 삼성전자, TSMC 등 소수 업체만 참여하는 최선단 공정보다 경쟁이 더욱 치열하지만 전체 시장 규모는 더욱 크다. 지난해 4분기를 기준으로 글로벌 10대 파운드리 기업의 매출(삼성전자는 추정치)을 비교해보면 레거시 파운드리 시장은 211억 1800만 달러 수준으로 전체 파운드리 시장(335억 3000만 달러)의 62%에 달했다. 4나노 이하 선단 반도체가 서버용 칩 등 일부 최첨단 제품에만 활용되는 데 비해 레거시 제품은 거의 대부분 전자 기기에 활용되고 있어 수요처 확보에도 유리하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은 레거시로만 2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0.18%를 차지하고 있다. 막대한 정부 지원과 낮은 수율에도 제품을 사줄 수 있는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감안하면 이른 시간 내에 시장 파이를 급격히 넓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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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영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어차피 선단 공정 쪽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니 시장 규모가 큰 레거시 부분에서 확실히 시장을 잡고 경쟁 우위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LCD 쇼크’ 다시 올라…긴장하는 국내 업계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경쟁하는 공정이 서로 다른 데다 고객사와의 신뢰 관계 등으로 중국의 파운드리 확장이 단기간에 직접적인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미국의 고강도 규제 속에서도 ‘설 자리’를 확실하게 구축하면서 한국 업체들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경고가 나온다.

과거 국내 업체들이 독주하던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중국 업체들이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장악하며 선두를 빼앗아갔던 사례가 비슷하게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중국이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범용 시장부터 장악에 나서면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국내 기업이 될 수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2위인 삼성전자는 선단 공정 경쟁에 치중하느라 레거시 경쟁까지 살필 여력이 크지 않고 DB하이텍 등 레거시 공정 기업들은 중국의 물량 공세에 맞설 체력이 충분하지 않다.

레거시 공정은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 최첨단 공정 경쟁의 뒤를 받쳐줄 안정적인 수입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TSMC는 레거시 공정에서 나오는 매출이 전체의 약 절반 가까이 된다. 삼성전자 또한 EUV를 활용하지 않는 레거시 공정에서 약 70%의 매출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는 업계 1위인 TSMC의 추격에 애를 먹는 상황에서 레거시 공정의 점유율을 중국에 뺏기기 시작하면 2위 자리마저 지키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창한 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중국 업체들은 레거시 쪽에서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한 뒤 한국에서 기술자를 데려오는 식으로 새로운 동력을 얻겠다는 전략”이라며 “파운드리뿐 아니라 전력반도체 등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는 반도체 분야에서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 제조 기술력이 절실한 중국은 각종 제재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은 중국의 레거시 투자에서 파생될 수 있는 고급 반도체 기술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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