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정진일 이스트시큐리티 대표 "구독형 보안서비스 개발…국민 PC백신 '알약' 명성 이어갈 것"[CEO&STORY]

문과 출신 공학도, 첫 외부 영입 대표로

취임 6개월만에 '알약 먹통 사태' 직면

두달 밤낮없이 직원들과 내부체계 정립

5년내 年 매출 1000억 원 달성 목표로

종합 IT기업 변신 비즈니스 청사진 준비

임기 후반전 B2B 맞춤 DNA 이식 집중


“백신 프로그램 ‘알약’으로 30년 세월 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회사인 만큼 대표직에 큰 중압감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업무에 도전한다는 흥분감이 더 컸죠.”

정진일(사진) 이스트시큐리티 대표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3월 취임 당시를 회고하며 “보안 기업은 처음이지만 시스템·네트워크 엔지니어로 꾸준히 활동했고 정보·데이터 보호와 관련해 컨설팅을 해왔기 때문에 보안 업무와 늘 가까이 있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정 대표는 이스트소프트(047560)에서 이스트시큐리티가 물적 분할한 후 외부에서 영입된 첫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삼성SDS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 다양한 기업에서 경험을 쌓으며 커리어를 이어왔다.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을 거쳐 델테크놀로지스에서는 솔루션 세일즈 리드(총괄)를 맡았다. 한국넷앱 글로벌에서는 삼성 비즈니스 총괄을 역임했고 메가존클라우드에서는 구글 클라우드 사업 총괄을 지냈다.

이력만 보면 정 대표의 선임은 다소 도전적인 인사라는 평가가 나올 만했다. 대표 직책을 처음 수행하는 데다 이스트시큐리티가 커리어상 첫 보안 기업이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앞설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흥분과 기대감이 이를 압도했다”면서 “커리어 내내 다양한 분야의 기업을 거치며 도전과 적응은 늘 경험한 일”이라고 대표 선임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이어 “20여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같은 역할을 해본 적이 없다”면서 “새로운 업무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정진일 이스트시큐리티 대표가 13일 서울 서초구 이스트시큐리티 사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권욱 기자정진일 이스트시큐리티 대표가 13일 서울 서초구 이스트시큐리티 사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권욱 기자




대학에 진학할 때만 해도 그는 평생 정보기술(IT) 업계에 몸담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지만 법조계 인사가 많았던 집안 분위기에 이끌려 문과로 진로를 택했다. 정 대표의 인생 궤적을 바꾼 것은 대학 시절 용돈 벌이로 했던 과외 경험이었다. 과외비를 두 배로 준다는 말에 혹해 이과 학생의 과외를 덜컥 수락했던 그는 고등학교 자연계열 수학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막상 공부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고 되레 적성에 맞다고 생각한 그는 묻어뒀던 어릴 적 꿈을 건져 올렸고 다시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해 전자공학도의 길을 걷게 됐다.



과외 활동과 재수 생활을 거치면서 정 대표에게 공부는 일상이 됐다. 대표직에 오른 이후에도 여전히 1~2주에 한 번은 서점을 가고 일주일에 많게는 서너 권의 책을 읽는 등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책 고르는 비법을 설명할 때는 정 대표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회사를 바꿔가며 다양한 역할을 받고 매번 새롭게 도전하다 보니 주변에서 부족한 아마추어처럼 생각을 할까 싶어 스트레스를 받았다”면서 “전문가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책을 읽고 관련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정리하는 게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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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일 이스트시큐리티 대표가 13일 서울 서초구 이스트시큐리티 사옥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 중 질의에 답하고 있다. 권욱 기자정진일 이스트시큐리티 대표가 13일 서울 서초구 이스트시큐리티 사옥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 중 질의에 답하고 있다. 권욱 기자


정 대표는 이스트시큐리티에 몸담으면서 소통을 기업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직원들의 평균연령이 낮은 젊은 기업인 만큼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문화가 정착되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솟아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상대적으로 직원 연령대가 높은 외국계 회사와 대기업에 몸담았던 정 대표는 젊은 직원들이 많은 것이 이스트시큐리티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소통 문화를 조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회사에 젊은 직원들이 북적대는 모습을 기대하며 출근했는데 코로나로 직원들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면서 “직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부터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취임한 지 6개월도 안 돼 맞은 ‘알약 배포 사태’도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지난해 8월 알약이 정상 소프트웨어를 랜섬웨어로 잘못 인지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스트시큐리티는 일부 의심스러운 프로그램을 감지했다며 이용자들에게 버전 업그레이드를 하라고 안내했지만 업그레이드를 하면 윈도우가 먹통이 되며 재부팅도 되지 않아 수많은 이용자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여러 기업을 거치며 산전수전을 겪은 정 대표였지만 언론의 십자포화 속에 전 국민으로부터 받은 질타는 과거에 경험한 위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는 “직원들과 거의 두 달 동안 밤낮없이 내부 보안 체계를 재정립하고 백신 프로그램 개발과 배포, 고객 서비스 체계 등을 면밀하게 점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며 “사실 모든 회사들이 디지털 전환을 꾀하지만 회사마다 여전히 오래된 내부 문화가 있고 구시대적인 시스템을 직원 입장에서 먼저 개선하자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어 “알약 사태를 통해 직원들이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문화와 소통 체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고 덧붙였다. 힘든 기간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취임 초반에 터진 위기는 초임 경영자가 마음을 다잡고 회사 경영의 전반을 알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정 대표는 회상했다.

정 대표는 이스트시큐리티가 보안 기업에서 종합 IT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하는 시기에 수장을 맡았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업 경험을 가진 그가 대표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스트시큐리티는 대표 서비스인 백신 프로그램을 넘어 향후 수십년을 책임질 비즈니스의 청사진을 새로 짜고 있다. 취임 전에는 정 대표에게도 이스트시큐리티는 곧 알약이었지만 취임하고 나니 다른 것들이 보였다. 그는 “이스트시큐리티는 잘 알려진 백신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데이터를 활용하는 위협 탐지·분석 솔루션 분야와 데이터 보호 영역에서도 사업을 전개해왔다”며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오며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틀을 갖췄다고 보고 범용적인 IT 서비스 전체로 사업 영역을 넓혀야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진일 이스트시큐리티 대표가 13일 서울 서초구 이스트시큐리티 사옥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 중 질의에 답하고 있다. 권욱 기자정진일 이스트시큐리티 대표가 13일 서울 서초구 이스트시큐리티 사옥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 중 질의에 답하고 있다. 권욱 기자


이스트시큐리티는 지난해 약 227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정 대표는 5년 내 연매출 1000억 원 달성을 목표로 잡았다. 사업 체질 전환을 통해 기업간거래(B2B) 영역에서 성과를 거둬야만 달성될 수 있는 목표다. 이스트시큐리티가 보안과 클라우드 기술을 종합한 구독형 보안서비스(SECaaS) 개발에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존 보안 솔루션이 기업 서버에 직접 설치해 사용돼왔다면 SECaaS는 이름처럼 클라우드 기술의 장점을 활용한다. 초기 서버 구축 등 각종 설치 비용 없이 사용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보안 옵션을 줄이거나 추가할 수 있다. 정 대표는 “디지털 전환 흐름과 함께 모든 솔루션들이 결국 서비스화하는 흐름 속에서 보안 역시 결국에는 구독형 서비스가 주축이 될 것”이라며 “보안 시장은 여타 소프트웨어보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이어서 아직은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지만 머지않아 구독형 서비스가 대세가 될 것이기 때문에 잘 준비해서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면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정 대표는 회사가 그동안 축적한 노하우와 기술을 무너뜨리고 또다시 쌓으면서 신규 서비스 고도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9월에는 SECaaS 사업을 기획하며 출범했던 태스크포스(TF)를 재정비했다. 향후 회사를 책임질 중요 프로젝트인 만큼 사업 기획 단계부터 차분히 재점검하기로 한 것이다. 부족했던 부분을 파악해 외부 인재까지 수혈했다. 그는 “우리 회사는 개발 부문에서 경쟁력이 있고 훌륭한 개발자도 많은 반면 경험 없는 IT 서비스 부문에서는 노하우나 자원은 충분치 않은 게 사실”이라며 “서비스 영역에서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최근 관련 전문가들을 대거 채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서비스는 우리 회사에 중요한 변곡점을 마련해줄 수 있기에 기존 개발처럼 시제품을 만들어 시장 반응을 체크하는 방식보다 기획부터 구현까지 처음부터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자 한다”면서 “모든 걸 원점에서 보기 위해 TF를 재정비했다”고 덧붙였다.

임기 반환점을 돈 정 대표는 “경기 회복이 더뎌 사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임기 전반전에 우리가 부족했던 B2B 비즈니스에 맞는 프로세스·정책, 조직 체계를 확립하는 등 많은 성과가 있었다”며 “앞으로도 부족했던 부분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다시 시스템화하는 과정을 거치면 짧은 기간 안에 유수의 IT 기업에 준하는 내부 체계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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