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생각을 생각하는 방법

[가지가지로 세상읽기]<7>

■김관숙 선거연수원 초빙교수

인간의 최대 무기는 '언어'

말하기, 협력적 소통 필수 요건

설참신도, 혀는 몸을 베는 칼 될 수 있어

이미지 = 최정문이미지 = 최정문




인어공주는 왜 사랑에 실패했을까. 인간의 다리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왕자에게 사랑 고백도 자신이 생명의 은인임도 밝힐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물거품으로 사라졌다는 슬픈 결말의 동화다. 말이 누군가의 운명까지 어떻게 좌우하는지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종종 가족과 친구에게 인어공주가 되고는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나의 마음을 알아차릴 거라고 믿는다면 큰 착각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이유도 말하기 덕이었다지. 유발 하라리가 저서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성공 비결을 ‘뒷담화’라고 한 것처럼 실제로 인간은 집단의 결속과 협력 과정에 뒷담화를 필수 요건으로 삼는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언어라는 추상적 사고 영역을 개발함으로써 살아남았고, 신체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최고 포식자가 되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다. 인간의 최대 무기는 바로 언어인 것이다.

‘말하기’ 하면 바벨탑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구약성경에 보면 인간들이 신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다고 하지 않는가. 인간들이 협력해서 탑을 높이 높이 쌓자 신은 탑을 못 쌓게 할 방법을 생각해냈는데, 바로 더 이상 협력을 못 하도록 말을 흩트렸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인간들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서 결국 성 쌓기를 멈췄고, 그래서 지금의 다양한 언어가 생겨났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말하기는 협력적 소통의 필수 요건인 것이다.

당연히 언어의 발달은 사회성의 발달을 초래한다. 언어라는 도구가 있어야 관계 맺기가 가능한 것이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두뇌가 발달하는데, 그래서 관계지능이라는 말까지 있다. ‘던바의 수’라고 알려진 개념에서 인류학자 던바는 인간이 맺을 수 있는 최대 관계 수를 150개라고 했는데, 다른 영장류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인간이 협력하고 통솔 가능한 최대 수 역시 150 정도라고 한다. 마을의 평균 인구 단위도 그렇고, 로마 시대의 보병부대부터 1개 중대의 규모에까지. 자신의 폰에 저장된 전화번호 수가 얼마나 되었는지가 당신의 관계 지능을 잘 보여주는 데이터일 것이다.



당나라 때 관리를 선발한 기준으로 ‘신언서판’이 있다. 남자를 평가하는 4가지 기준으로 풍채와 언변, 문장력과 판단력이 그것인데, 관료가 되기 위해 꼭 갖춰야 하는 자질이다. 이에 비해 여자를 평가하는 기준은 좀 달랐는데 데 맵시, 말씨, 솜씨, 마음씨 4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성의 입장에서 조금 불쾌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과거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는 성별로 요구하는 덕목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말’인 것으로 보아, 사람에게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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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하면 이런 안타까운 에피소드도 떠오른다. 2010년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연설이 끝나고 주최국인 한국의 기자에게 질문하라고 한 적이 있다. 질문권을 받은 한국 기자들이 당황한 탓인지 어색한 침묵이 계속 흐르자, 오바마는 ‘혹시 영어를 못해서 그런 거라면 통역이 준비돼 있다’ 라는 친절한 말까지 덧붙인다. 그래도 계속 질문이 없자 한 중국 기자가 일어나 같은 동양권이니 한국기자 대신 질문해도 되겠냐며 나서는 촌극까지 벌어지고, 결국 질문권은 중국 기자에게 넘어갔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얼굴이 화끈 달아오는 장면이다. 왜 똑똑한 우리 기자들은 질문을 안 했을까.

실제로 별로 할 얘기가 없었거나, 회견 시간이 너무 길어 그만 마쳤으면 하는 단순한 생각이나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주저하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사실 우리 사회는 질문에 인색하고, 우리 역시 잘 질문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동양적 정서에서 질문이란 어쩌면 거역이나 대듦으로 보이기도 했을 것이며, 산업사회를 거치며 질문이란 종종 공동체의 결속과 발전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지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질문은 금기나 터부가 되어버리고, 살아남기 위해 비판적 사고를 배제하고 그저 조용히 순응하는 태도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지.

질문을 한다는 건 자신의 생각이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비판적 사고력을 갖춰야 가능하다. 질문은 생각을 끄집어낼 수 있는 굉장히 좋은 말하기의 형태라고 하겠다. 만약 질문이 없는 교실이라면 더 이상 뜨거운 배움의 공간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학교교육과정에서는 ‘질문을 만드는 수업’을 표방하고, 토론 수업도 많이 늘어났고 구술형 평가도 확대되고 있다. 말하기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학습 도구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 미래인재에게 필요한 핵심역량으로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 외에 의사소통 역량과 협력적 소통역량을 꼽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생각하는 똑똑한 기계에게 밀리지 않는 인간을 지키기 위한 것이렸다. 1년 동안 챗GPT가 세상을 얼마나 바꾸었는가. 그러나 그 똑똑한 챗GPT도 인간이 던지는 질문이 똑똑하지 않다면 종종 한심한 바보가 되어버리고 만다. 기계통역가 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프롬프터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뜨고 그의 몸값이 높은 이유이다. 좋은 질문을 던져야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다. 기계에도 말하기는 중요한 소통 도구가 된다.

우리 속담에도 말로 뺨을 맞을 수도 있고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다고 한다. ‘설참신도’라는 말마따나 종종 혀는 몸을 베는 칼이 되곤 한다. 돌아보면 우리 모두 말로 인해 주고받는 상처가 얼마나 난무하는 것인지. 사소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관계를 허물고 사이를 끈끈하게도 하는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때, 혹시 내가 누군가를 말로 때리지는 않았는지 한번들 돌아보자. 다정한 말 한마디가 절실히 그리운 추운 시절, 말 한마디가 따뜻한 연탄이 되어 나도 뜨거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성공의 90%는 인간관계가 좌우한다. 인간관계의 90%는 말이 좌우한다. 말해야 산다! 잘 말해야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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